일회용 나라 일회용 나라/ 강승남 일회용 라이터가 육백 년 역사를 태워버렸다 단 돈 백원짜리 일회용 라이터가 조선의 정신을 쓰러뜨렸다 전국의 산을 다 돌아도 구하기 어렵다는 아름드리 소나무로 지어진 숭례문을 일회용 행정이, 일회용 방재 대책이, 일회용 정치가, 일회용의 무례가 무너뜨렸다 이 어처구니 .. 신작시 모음 2008.02.13
깊다는 것은 깊다는 것은 여위어 간다는 것 차가운 바람에 속절없이 떨어지는 낙엽처럼 깊다는 것은 어두워진다는 것 저무는 산길에 서서 홀로 불타는 노을 바라보는 것 깊다는 것은 견디어 낸다는 것 가을 밤 이슬에 젖어 울며 밤을 새는 풀벌레들처럼 이 추운 계절을 고스란히 견디며 살아야 한다는 것 2007. 10. 22... 신작시 모음 2007.10.23
가을 산에서 가을 산에서 사랑은 어여쁜 꽃잎인 줄만 알았다 꽃잎 지던 날에는 사랑이 아픔인 줄도 알았다 그러나 사랑이 온 몸 태워버리는 불길일 줄은 사랑의 끝이 바람에 흩날리는 재뿐일 줄은 찬서리 서러운 가을날이 저물어서야 알았다 2007. 10. 6. 行雲 신작시 모음 2007.10.06
배롱나무 배롱나무 가지의 밑둥을 툭 건드리자 가지 끝, 그리고 환하게 핀 꽃잎까지 파르르르 떨었다 벌써 오래 전 여름날의 어느 산사..... 그래서 간지럼나무라고도 하지 기억의 밑둥에서 아련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리움이 꽃잎처럼 떨었다 산다는 게 그저 여름날배롱나무가지끝한순간의떨림이었다 =========.. 신작시 모음 2007.08.19
타워 타워 1 66층 궁전의 꼭대기에서 내려다보면 저 아래 있는 사람들이 꼭 벌레처럼 보인다 66층 궁전의 꼭대기에서 바라보면 멀리 산들도 나지막히 엎드려 있다 2 궁전에서는 아이들 부르는 엄마 소리도 들을 수 없다 저렇게 높은 곳에서는 누구를 부를 수도 없을 것이다 놀이터도 수영장도 식당도 다 궁전 .. 신작시 모음 2007.06.12
나무 그늘에 눕다 나무 그늘에 눕다/ 강승남 오월의 맑은 어느 날 나무 그늘 아래 누우면 황금빛 햇살에 아른거리는 나뭇잎 눈이 부시어 가만히 눈을 감으면 온 몸을 간질이는 편안한 바람 엷은 졸음처럼 가물가물 내 곁에 다가앉는 머언 옛날 생각해 보면 온 몸 떨려오던 기쁨들도 가지 끝에 머물다 떠나간 바람 슬픔으.. 신작시 모음 2007.05.29
겨울나무 겨울나무 /강승남 나무는 겨울나무만이 나무다 꽃 피던 시절도 지나고 푸르던 잎마저도 떨어지고 아무것도 남지 않은 빈 가지로 차가운 겨울바람 앞에 서 있을 수 있는 나무만이 진정으로 나무다 세속의 부귀 영화 사랑마저 다 벗어버리고 기나긴 고행의 끝 마침내 해탈한 성자처럼 제가 가진 모든 것 .. 신작시 모음 2007.01.05
변절 변절 나무는 이제 완연한 가을 빛이다 여름 내내 뜨겁게 지켜 온 푸른 서슬 잃어버리고 *하룻밤 서릿김에 온통 노오랗게 물이 들었다 세상에, 변절이 저렇게 아름다울 수가 있다니! 가을 빛으로 물든 거리가 차라리 눈이 부신데 한숨 같은 바람에 떨어지는 은행잎 하나 나도 이젠 나를 배반해도 되겠다 .. 신작시 모음 2006.10.31
개망초꽃 개망초꽃 여름 날에는 개망초꽃으로 산다 구름 한 점 없는 땡볕에 바람도 혀를 빼물고 헉헉거리는데 푸르름도 겨운 산천 어디서나 버즘처럼 하얗게 피어난 꽃 한 방울 비조차 내리지 않아 논둑길엔 먼지만 푸석푸석한데 해 뜨거운 줄도 모르고 종일 놀이에 정신 팔린 코흘리개들 같은 꽃 그늘에 앉아.. 신작시 모음 2006.08.03
산길 산길 기나긴 겨울을 지나서 온 길은 이젠 어깨가 다 굽어서 힘겹게 산을 오르고 있다 오르다 지치면 나무 그늘에 앉아 쉬다가 연초록빛 가지 사이 새 소리에 깜박 졸기도 하다가 생각난 듯 다시 산을 오른다 길이 지나간 자리마다 긴 잠 깨어난 봄은 파아랗게 돋는데 산이 높아질수록 길은 가물가물 여.. 신작시 모음 2006.04.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