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작시 모음

일회용 나라

行雲300 2008. 2. 13. 03:46

일회용 나라/ 강승남 


일회용 라이터가 육백 년 역사를 태워버렸다


단 돈 백원짜리 일회용 라이터가 조선의 정신을 쓰러뜨렸다
전국의 산을 다 돌아도 구하기 어렵다는 아름드리 소나무로 지어진 숭례문을 일회용 행정이,
일회용 방재 대책이, 일회용 정치가, 일회용의 무례가 무너뜨렸다

이 어처구니 없는 비극 앞에서도 다시

일회용 팬티 같은 사죄가 이어지고 일회용 행주 같은 수사가 진행되고 일회용 반창고 같은 대책이 발표되고 일회용 현수막 같은 성토가 들끓고 일회용 화장품 같은 논평이 광을 내고 일회용 냄비 같은 분노의 불길이 온 나라를 뜨겁게 달구고 있다 

버려야 할 일회용은 버리지 못하고
지켜야 할 역사는 지키지도 못하는
일회용의 나라에 슬픔만이 끝없이 재생되고 있다

(우리 숭례문 불에 타시던 날에 쓰다)

2008. 2. 12. 行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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