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석규] 시월하늘 시월하늘 -김석규 철새 돌아오는 때를 알아 누가 하늘 대문을 열어 놓았나. 태풍에 허리를 다친 풀잎들은 시든 채 오솔길을 걷고 황홀했던 구름의 흰 궁전도 하나둘 스러져 간 강변 시월하늘 눈이 시리도록 너무 높고 맑고 푸르러 어디에 하늘 한 만 평쯤 장만할 수 있을지 주민등록증하고 인감도장을 .. 시하늘 시편지 2009.10.16
[강 만] 콩나물 시루 콩나물 시루 -강 만 둥글고 작은 세상에 물을 뿌린다 투명한 물방울들이 눈부시게 굴러 내린다 콩나물들의 입술이 젖는다 금빛 머리가 우주를 밀어 올리며 한 치씩 솟는다 하루분의 양식을 나누어 먹고 서로의 키를 낮추며 가즈런히 크는 저 순결의 공동체 평등의 모습이 가슴 시리도록 아름답다 *출.. 시하늘 시편지 2009.10.16
[신경림] 갈대 갈대 -신경림 언제부턴가 갈대는 속으로 조용히 울고 있었다. 그런 어느 밤이었을 것이다. 갈대는 그의 온몸이 흔들리고 있는 것을 알았다. 바람도 달빛도 아닌 것. 갈대는 저를 흔드는 것이 제 조용한 울음이라는 것을 까맣게 몰랐다. ……산다는 것은 속으로 이렇게 조용히 울고 있는 것이란 것을 그.. 시하늘 시편지 2009.10.16
[이규리] 수평선 수평선 -이규리 세상에서 가장 긴 자가 수평선을 그었으리라 허리나 목을 백만 번 감아도 탱 하고 제자리로 돌아가는 푸른 현. 내 눈에도 수평선이 그어졌다 바다를 떠나와서도 자꾸 세상을 이등분하는, 저 높낮이와 명암들 수평선 건져내어 옥상에 걸면 오래 젖어온 생각도 말릴 수 있겠다 *출처 : 시.. 시하늘 시편지 2009.10.16
[여태천] 어쩌면 오늘이 어쩌면 오늘이 -여태천 하루 종일 보채던 아이가 한밤중에 품속으로 파고든다. 엄습하듯 생각의 먼 후대를 불러들이는 너. 너를 안고 불 꺼진 오늘을 천천히 걸어본다. 납작해진 너를 안으면 안을수록 내가 나를 안고 있다는 생각. 그 생각하면 할수록 나를 심각하게 생각하는 게 내가 아니라 너라는 .. 시하늘 시편지 2009.10.16
[김종해] 가을문안 가을문안 -김종해 나는 당신의 어디가 아픈지 알고 있어요. 알고 있어요, 하지만 나는 말할 수 없습니다. 오오, 말할 수 없는 우리의 슬픔이 어둠 속에서 굳어져 별이 됩니다. 한밤에 떠 있는 우리의 별빛을 거두어 당신의 등잔으로 쓰셔요. 깊고 깊은 어둠 속에서만 가혹하게 빛나는 우리의 별빛 당신.. 시하늘 시편지 2009.10.16
[김종해] 가을 문안 '좋은 시 아름다운 세상' 『詩하늘』詩편지 가을문안 -김종해 나는 당신의 어디가 아픈지 알고 있어요. 알고 있어요, 하지만 나는 말할 수 없습니다. 오오, 말할 수 없는 우리의 슬픔이 어둠 속에서 굳어져 별이 됩니다. 한밤에 떠 있는 우리의 별빛을 거두어 당신의 등잔으로 쓰셔요. 깊고 깊은 어둠 속.. 시하늘 시편지 2009.09.27
[권혁웅] 파문 파문 -권혁웅 오래 전 사람의 소식이 궁금하다면 어느 집 좁은 처마 아래서 비를 그어 보라, 파문 부재와 부재 사이에서 당신 발목 아래 피어나는 작은 동그라미를 바라보라 당신이 걸어온 동그란 행복 안에서 당신은 늘 오른쪽 아니면 왼쪽이 젖었을 것인데 그 사람은 당신과 늘 반대편 세상이 젖었을.. 시하늘 시편지 2009.08.21
[김용택] 빗장 빗 장 -김용택 내 마음이 당신을 향해 언제 열렸는지 시립기만 합니다 가만히 있을 수 없어 논둑길을 마구 달려 보지만 내달아도 내달아도 속떨림은 멈추지 않습니다 하루 종일 시도 때도 없이 곳곳에서 떠올라 비켜 주지 않는 당신 얼굴 때문에 어쩔 줄 모르겠어요 무얼 잡은 손이 마구 떨리고 시방 .. 시하늘 시편지 2009.08.09
[이진흥] 산책길에서 산책길에서 -이진흥 아침 햇살이 골짜기를 깨운다 골짜기를 따라 오르는 산길이 깨끗하다 길가의 키 큰 상수리나무 가지 위에 앉아서 줄무늬 다람쥐가 소리를 지르고 있다 이 아름다운 세상에 아무런 조건 없이 내가 살고 있다니! *매일신문 ------------------------------------------------------------ 삶의 가치가 .. 시하늘 시편지 2009.08.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