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지침 수지침 겨우 잠이 든 둘째 아이의 배에 연결된 비닐 주머니에는 피고름이 고이고 있다. 저 피고름이 다 빠지려면 앞으로 이 주일은 걸려야 한다고 했다. 해쓱한 아이의 얼굴이 안쓰럽다. 어제 밤 갑자기 배가 아프다는 아이에게 어설픈 솜씨로 수지침을 놓아 주었지만, 그러나 아이는 밤새 잠을 이루지 .. 신작시 모음 2006.04.06
아침, 골목길 아침, 골목길 날마다 아침이면 이 골목에는 아침 7시의 여자가 지나간다 노오란 봄옷을 입고서 소리도 없이 골목길을 지나간다 깊은 잠에 들었던 골목은 아침 7시의 여자가 지나가고 나면 꿈을 꾼 듯 잠에서 깨어난다 어제의 피로와 슬픔과 숙취는 머리 감듯 잊혀지고 골목의 아침은 다시 분주해진다 .. 신작시 모음 2006.04.06
가을의 노래 가을의 노래 내 영혼의 텅 빈 뒤뜰엔 가을이 소리없이 내렸습니다 푸르던 여름 나무도 어느새 희끗 바래어지고 맑은 하늘이 이젠 눈에 시립니다 내 영혼의 뒤뜰에 밤이 들면 귀뚜라미 소리 가만히 귀 기울여 봅니다 밤 하늘 별빛을 오래도록 바라보기도 합니다 저렇게도 머언 빛들, 저렇게도 작은 소리.. 신작시 모음 2006.02.26
11월 11월 산은 지금 다비식을 거의 끝내가는 참이다 식어가는 불티 속에 바람이 스적스적 유골을 수습하고 있다 사랑이 한 생을 불태우고 남은 자리엔 사리 몇 과쯤 반짝이고 있을까 노을도 스러진 산길에서 잿불로 남은 가슴 속을 뒤적이고 있다 2004. 11. 1 行雲 신작시 모음 2006.02.25
내 자리 내 자리 북한산 하산길 서너 명 발목 적실 만한 곳 낙엽들도 쉬어 가는 맑은 개울 있어 세사에 지친 마음 씻노라면 뼛속까지 시려오는 이 서느러운 기쁨이여 어디선가 복사꽃 한 잎 사뿐 내려앉으면 내 고단한 삶도 그처럼 지는 날이 아름답기를 바라네 햇살 어룽어룽 발을 담그고 산새들 노래소리 더.. 신작시 모음 2006.02.25
강 - 부용대에서 강(江) - 부용대에서 강을 건너서 바라보네 물돌이동 낙동강 한 굽이 물 위에 뜬 저 연꽃 보이네 오롯이 기쁘고 슬프던 일들 강을 건너니 다 그리웁네 - 삶은 연꽃 강을 건너야 보이는 한 송이 고운 연꽃 노을에 물들어 휘어지는 강물 한 굽이 ======== *부용대는 하회마을에서 강 건너편 언덕 위에 있다. 여.. 신작시 모음 2006.02.25
저녁 별처럼 저녁 별처럼 가난하던 어린 날엔 궁금한 것도 많았지 꽃들은 왜 피었다 지는지 가을 밤엔 기러기들이 어디로 날아가는지 나는 어떻게 태어나게 되었는지 ...... 이제는 어렴풋이 알겠네 모든 것들은 다만 이 세상이 궁금해서 왔다가 또한 저 세상이 궁금해서 가는 것 마음을 지닌 것들은 본래가 궁금한 .. 신작시 모음 2006.02.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