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청호] 잡초 뽑기 잡초 뽑기 / 하청호 풀을 뽑는다 뿌리가 흙을 움켜쥐고 있다. 흙 또한 뿌리를 움켜쥐고 있다. 뽑히지 않으려고 푸들거리는 풀 호미 날이 칼 빛으로 빛난다. 풀은 작은 씨앗 몇 개를 몰래 구덩이에 던져 놓는다. ***************************************************** 시골집 맞은 편 산기슭에 있는 과수원에 갔었습니.. 시하늘 시편지 2008.07.14
[문인수] 송산서원에서 묻다 송산서원에서 묻다 / 문인수 마을 뒤, 산 밑에 오래 버려진 송산서원에서 나는 폐허에게 묻는다. 이쯤에서 그만 풀썩 무너지고 싶을까. 이것저것 깨묻는다. 찔레 덤불이 겹겹 앞을 가로막으며 못 들어가게 한다. 돌아서고 싶을까. 찔레 가시에 찔리며 긁히며 억지로 들 어선 마당, 그리고 뒤꼍. 풀대들, .. 시하늘 시편지 2008.07.14
[정끝별] 가지가 담을 넘을 때 가지가 담을 넘을 때 / 정끝별 이를테면 수양의 늘어진 가지가 담을 넘을 때 그건 수양 가지만의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얼굴 한번 못 마주친 애먼 뿌리와 잠시 살 붙였다 적막히 손을 터는 꽃과 잎이 혼연일체 믿어주지 않았다면 가지 혼자서는 한없이 떨기만 했을 것이다 한 닷새 내리고 내리던 고집 .. 시하늘 시편지 2008.07.14
[이수익] 안개꽃 안개꽃 / 이수익 불면 꺼질듯 꺼져서는 다시 피어날 듯 안개처럼 자욱히 서려 있는 꽃. 하나로는 제 모습을 떠올릴 수 없는 무엇이라 이름을 붙일 수도 없는 그런 막연한 안타까움으로 빛깔진 초연初戀의 꽃. 무데기로 무데기로 어우러져야만 비로소 형상이 되어 설레는 느낌이 되어 다가오는 그것은 .. 시하늘 시편지 2008.07.14
[최문자] 정전기 정전기 / 최문자 건기인가 봐요 우리, 새들도 입 안이 마른다는. 바짝 마른 말로 통화하고 있잖아요 지금, 마른 대궁만 남은 당신 말에 나는 없는 미련 지지직거리며 타는 시늉 다 해보지만 갑자기 들러붙어요 말과 말 사이 부슬부슬 떨어지는 말의 먼지들 뿌연데 들리죠 우리 언어가 물 마르는 소리 따.. 시하늘 시편지 2008.07.14
[강미정] 촉 촉 / 강미정 젖은 수건 속에 오이씨를 넣고 따뜻한 아랫목에 두었죠 촉 나셨는지 보아라, 싸여진 수건을 조심조심 펼치면 볼록하게 부푼 오이씨는 입술을 달싹이며 무슨 말인가 하려는 듯 입을 반쯤만 열고 있었죠 촉 나시려고 파르르 몸 떠는 것만 같아서 촉 보려는 제 마음은 얼마나 떨렸겠습니까 조.. 시하늘 시편지 2008.07.14
[강인한] 어디서 왔을까, 네 이름은 어디서 왔을까, 네 이름은 / 강인한 빗방울 하나가 돌멩이 위에 떨어진다. 가만히 돌 속으로 걸어가는 비의 혼, 보이지 않는 얼룩 하나, 햇볕 아래 마른 돌멩이 위에서 지워진다. 어디서 왔을까, 네 이름은 내 가슴 속에 젖어 물빛 반짝이다가 얼룩처럼 지워져버린 네 이름은. 빗방울 하나가 돌멩이 위에.. 시하늘 시편지 2008.07.14
[곽재구] 민들레 꽃씨들은 어디로 민들레 꽃씨들은 어디로 / 곽재구 그날 당신이 높은 산을 오르던 도중 후, 하고 바람에 날려보낸 민들레 꽃씨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요 하릴없이 무너지는 내 마음이 파, 하고 바람에 날려보낸 그 많은 민들레 꽃씨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요 어느 시인의 뜰을 방문하였습니다. 넓은 그의 뜰엔 풀꽃들로 .. 시하늘 시편지 2008.07.14
[노향림] 꽃들은 경계를 넘어간다 꽃들은 경계를 넘어간다 / 노향림 꽃들이 지면 모두 어디로 가나요 세상은 아주 작은 것들로 시작한다고 부신 햇빛 아래 소리없이 핀 작디 작은 풀꽃들, 녹두알만 한 제 생명들을 불꽃처럼 꿰어 달고 하늘에 빗금 그으며 당당히 서서 흔들리네요 여린 내면이 있다고 차고 맑은 슬픔이 있다고 마음에 환.. 시하늘 시편지 2008.07.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