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하] 나무를 낳는 새 나무를 낳는 새 / 유하 찌르레기 한 마리 날아와 나무에게 키스했을 때 나무는 새의 입 속에 산수유 열매를 넣어주었습니다 달콤한 과육의 시절이 끝나고 어느 날 허공을 날던 새는 최후의 추락을 맞이하였습니다 바람이, 새의 육신을 거두어 가는 동안 그의 몸 안에 남아 있던 산수유 씨앗들은 싹을 .. 시하늘 시편지 2008.07.14
[강승남] 기마 인물형 토기 '좋은 시 아름다운 세상' 『詩하늘』시편지 기마 인물형 토기 / 강승남 어디로 가는 길이 저리도 멀어 죽어서도 그는 말에서 내리지 못하는 걸까 평생을 품고 다니던 슬픔 삭아서 다 없어지고 텅 빈 그릇이 되어서도 다시 무엇을 담으러 떠나는 걸까 깊은 잠에 든 듯 평안한 얼굴로 윤회의 길 떠나는 저 .. 시하늘 시편지 2008.02.18
[오탁번] 그렇지 그렇지 / 오탁번 ‘어떻게 지내나?’물으면 '그렇지' 할 뿐 더 이상 말이 없다 이 말만 듣고는 무슨 뜻인지 종잡을 수 없다 허나 우리 동네에서는 이 말만 듣고도 엊저녁 밤 농사가 신통했는지 안 했는지 고추농사 재미 봤는지 비료 값 농약 값 빼고 나 면 말짱 헛농사 지었는지 훤하게 안다 눈빛과 말품.. 시하늘 시편지 2008.02.09
[김윤현] 수평선 수평선 / 김윤현 산다는 건 망망대해 혼자서 애태우며 출렁거리는 일이다. 알아들을 수 없는 음성으로 중얼거리다가 바람이 조금 불어도 온 몸에 주름이 지는데 주름이 한 번 지면 한없이 번지는데 갈 길이 몸 안에 있어도 멀고멀어 자신도 모르는 소리를 하기는 하는데 생은 비늘처럼 부서지기만 반.. 시하늘 시편지 2008.01.22
[반칠환] 새해 첫 기적 새해 첫 기적 / 반칠환 황새는 날아서 말은 뛰어서 거북이는 걸어서 달팽이는 기어서 굼벵이는 굴렀는데 한 날 한 시 새해 첫날에 도착했다 바위는 앉은 채로 도착해 있었다 시하늘 시편지 2008.01.22
[문무학] 잠- 코의 시간 잠-코의 시간 / 문무학 중년 사내의 곯아떨어진 잠을 듣는다 황소 한 마리, 우악스레 몰고 가며 산 하난 족히 들썩거릴 소울음 소리낸다 쉰다는 잠에까지 그 깊은 잠으로까지 버거운 짐 끌고 가서 되새김질 하고 있다 가끔은 숨도 멈추고 뒤척거리기도 하면서……. 사내의 깊은 잠은 코에게 준 발언 시.. 시하늘 시편지 2008.01.22
[김기택] 나뭇잎 떨어지다 나뭇잎 떨어지다 / 김기택 나뭇잎에도 무게가 있네. 그 무게에 나뭇잎이 떨어지네. 나뭇잎 무게는 곧장 땅에 떨어지지 않네. 바람과 공기가 떨어지는 무게를 건드려보네. 바람이 자신을 붙들고 마음 껏 흔들도록 나뭇잎은 그냥 내버려두네. 후려치고 할퀴는 것을 다만 쳐다보기 만 하네. 바람의 힘이 .. 시하늘 시편지 2008.01.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