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 교사 부부 교사 부부 교사인 아내와 나는 방학 때면 아들 녀석 둘과 종일 집에 함께 있는 날이 많다 그런 날이면 아내는 저녁 설거지를 끝내고는 금세 곯아떨어지고 나는 잠이 안 와서 밤늦게 앉아 이렇게 시를 쓴다 꿈나라에 갈 때도 아내와 함께 가고 싶다 2003. 2. 26 行雲 나무는 집을 짓지 않는다 2006.02.25
고로쇠나무 고로쇠나무 사람들에게 찢긴 상처 밤새 앓아서 맑은 약수로 돌려주는 나무 봄날 아침 산길에 주렁주렁 물통 매달고 안간힘으로 버티고 있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작고 여린 잎사귀가 착한 아내의 손바닥 같다 조그만 가시도 못 참는 나의 손바닥 내 시는 아직도 멀었다 2002. 10. 17 行雲 나무는 집을 짓지 않는다 2006.02.25
흐르는 강물 속에는 흐르는 강물 속에는 강물이 깊을수록 잔잔한 것은 강물 속 가장 낮은 곳에 말없이 엎드린 바닥이 있기 때문이다 강물이 흐를수록 푸른 것은 강물 속 가장 어두운 곳에 참으며 살아가는 바닥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다면 가령, 바닥이 들판과 같아지거나 언덕같이 산과 같이 솟아오르면 강물이 어찌 .. 나무는 집을 짓지 않는다 2006.02.25
DAM DAM 쏟아져 내린다 싯푸르게 고인 슬픔들 우르르르 쏟아져 하얀 함성으로 부서진다 잠들었던 강물이 용틀임하며 깨어난다 산들도 번쩍 눈을 뜨고 무지개 하늘로 솟는다 소양강 댐이 넘칠 듯 불어난 물을 방류하던 날 나도 너와 얼크러져 저렇게 콸콸 흘러가고 싶어 오랜 세월 눈물로 고인 그리움의 물.. 나무는 집을 짓지 않는다 2006.02.25
참으로 아름답구나 참으로 아름답구나 참 작기도 하구나, 너희들 밤하늘 파르르 떠는 별빛처럼 오소소 떨어진 하나님의 비듬처럼 쬐끄만 꽃잎 올망졸망 피우고서 비좁은 땅에 많이도 모여 사는구나 지나가는 사람들 잡초라 웃지만 가장 낮은 마음으로 불러보는 너희, 냉이꽃, 꽃마리, 꽃다지들아 아무도 너희를 심지 않.. 나무는 집을 짓지 않는다 2006.02.25
길 길 모든 길은 바닥이다 바닥이 없이는 어디도 갈 수 없다 다른 사람의 발 아래에 자신을 눕힐 수 없는 사람은 어떤 길도 될 수 없다 남의 앞에 우뚝 서 있으려는 자 언젠가는 길가는 사람들에 의해 깨뜨려져서 길 밖으로 버려지리니 모든 위대한 길들은 바닥에 스스로를 눕힌 자들에 의해 완성된다 바닥.. 나무는 집을 짓지 않는다 2006.02.25
자전거 자전거 밟혀야만 일어서는 것들이 있다 밟힐수록 더욱 힘차게 달리는 것들이 있다 아무도 밟지 않을 때는 죽은 듯 있다가도 누가 밟을라치면 손잡고 벌떡 일어서서 바람 한 점 불지 않는 답답한 세상을 씽씽 바람 일으키며 달리는 것들이 있다 몇 달 전부터 아무도 타지 않아 아파트 복도에 쇠줄로 채.. 나무는 집을 짓지 않는다 2006.02.25
상봉 상봉 이젠 죽어도 여한이 없겠다고 어깨를 들썩이며 웁니다 같은 땅에 뿌리를 두고도 다른 나무 다른 가지로 갈라져서 그 좋은 청춘 시절 다 보내고 저무는 가을 날 시들어서야 만난 가랑잎들 가슴에 맺힌 이야기들이야 기다림의 세월만큼 끝이 없지만 바람은 사정이 없습니다 이제 또 헤어지면 썩어.. 나무는 집을 짓지 않는다 2006.02.25
산낙지 산낙지 길다란 다리는 토막 나도 꿈틀거린다 젓가락으로 집으면 악착스런 빨판으로 떨어지지 않는 너 원시의 갯벌 잃고 술안주로 몸부림치며 죽음으로 얻는 이름 - 산, 낙, 지...... 나무는 집을 짓지 않는다 2006.02.25
종이 종이 종이가 살을 베기도 한다 대개 새 종이, 그 중에도 날카로운 칼이나 가위 따위로 싹둑 잘린 직선의 종이들이 그렇다 새 종이라도 톱니 모양의 굴곡이 있으면 살을 베지 않는다 종이가 짐을 이고 버티기도 한다 종이를 둥글게 말아서 위에다 물건을 올려놓으면 그 가냘픈 종이가 서서 버틴다 종이.. 나무는 집을 짓지 않는다 2006.02.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