낡은 집 낡은 집 벽에선 못 박는 소리 쾅쾅 울리고 천장에선 아이들 뛰는 소리 쿵쿵거린다 도배도 페인트칠도 새로 했지만 속은 이제 다 낡은 집 조그만 충격에도 집이 터엉터엉 운다 어디선가 바이엘 연습곡 치는 소리 남자와 여자가 싸우는 소리 밖에서는 생선 장사 마이크 소리 낡은 집은 맥없이 귀만 밝다 .. 나무는 집을 짓지 않는다 2006.02.25
점 점 철길은 들판을 버리고 쉬지 않고 달려서 저 먼 지평선 위 한 점이 된다 육중한 기차도 연기처럼 사라져 버리는 소실점 평행의 두 레일이 마침내 하나가 되는 곳 사랑도 미움도 빛과 어둠도 어쩌면 너와 나 있는 것과 없는 것마저도 구분과 거리가 소실되는 모든 길의 끝 아득한 합일의 지점 언젠가는.. 나무는 집을 짓지 않는다 2006.02.25
독도에게 독도에게 독도야 독도야 머나먼 동해 바다 끝에 서서 바람과 파도에 깎이며 벼랑으로 버티고 선 독도야 수백만 년 세월 외로움이 진저리도 나겠지만 어디 너만이 홀로 섬이겠느냐 서해 끝의 가거도 제주 남쪽 마라도 그 어느 섬이 독도 아니겠느냐 올망졸망 정겨운 다도해의 섬들도 다가가 하나될 수.. 나무는 집을 짓지 않는다 2006.02.25
무인도 무인도 그리워서 찾아갔네 무인도 노를 저어 바람결에 물새소리 풀꽃들 등대 함께 살고 있었네 푸른 바다 맑아서 깊은 물 고기들 노닐었네 고기들과 노닐었네 2003. 2. 14 行雲 나무는 집을 짓지 않는다 2006.02.25
동태 동태 죽어서도 그는 눈을 감지 못하였다. 혹독한 겨울 바람 채찍에 얼어터지며 굽이굽이 멀고 험한 고갯길 넘어 이곳까지 찾아와 쓰러지고 만 것이다. 마지막까지도 그는 말하고 있었다. 저 먼 동쪽 끝 아득히 넓은 바다, 그 푸른 사랑과 넘실대는 자유를 …… 사람들은 아무도 듣고 있지 않았다. 백열.. 나무는 집을 짓지 않는다 2006.02.25
그냥 산악회 그냥 산악회 삼악산 가파른 등산로 희미한 길을 헤매는데 단풍잎처럼 매달린 빛 바랜 리본 하나 그냥 산악회라고 써 있다 무슨 산악회가 아니라 그냥, 그냥 산악회 산이야 그냥 다니는 거지 꼭 무슨 이유가 있어야 하나 리본이 팔랑 웃는다 그냥 산악회 리본 덕에 잃었던 길을 다시 찾았다 2002. 9. 12 行.. 나무는 집을 짓지 않는다 2006.02.25
폐선 - 곰소항에서 폐선 - 곰소항에서 다 비우고 나서야 그곳에 이르게 되리 밀려드는 그리움도 머언 수평선의 꿈도 우리를 흔들 뿐이니 다 버리고 나서야 거기 쉴 수 있으리 그리움도 꿈도 모두 썰물 같은 것 돌아가야 하리 어두워지기 전에 아무도 찾지 않는 곳 홀가분히 드러누워 세월에 젖은 몸 햇볕과 바람에 말려서 .. 나무는 집을 짓지 않는다 2006.02.25
산 산 산은 늘 거기 서 있었다 비가 오거나 눈이 올 때 젖은 채로 찾아가면 산도 젖은 채로 맞아주었다 내가 멀리 떠났을 때도 산은 늘 거기 있었고 내가 산을 잊었을 때도 산은 나를 잊지 않았다 억만 년의 무게로 기다림을 쌓고 쌓아 우뚝해진 저 산봉우리 외롭고 쓸쓸한 날들을 절벽처럼 견디어서 세월.. 나무는 집을 짓지 않는다 2006.02.25
텃밭 텃밭 용마산은 오늘도 가슴 열어서 고운 주검 하나 새로 묻었다 붉게 파헤쳐진 흙 가슴속 먼 별의 씨앗 하나 눈을 감았다 산중턱 쓰러질 듯한 오두막집 앞 낙엽처럼 남루한 늙은이 혼자 기우는 봄볕을 등에 업고서 지나간 세월을 호미질 한다 주검에 기댄 낡은 산자락에 한 뙈기 텃밭으로 남은 여생 가.. 나무는 집을 짓지 않는다 2006.02.25
헌 신 헌 신 죽은 후에야 그는 번뇌를 벗은 걸까 사랑인 줄 알고 짊어지고 다닌 걸까 너덜너덜 닳아지고 찢어져서야 인연의 끈 풀어버린 걸까 마침내 가벼워져서 양지바른 언덕에 홀가분히 봄볕 쬐는 헌 신 한 짝 곁에서는 목련이 살점 같은 꽃잎 뚜욱 뚝 떨어뜨리고 있다 2002.4.10 行雲 나무는 집을 짓지 않는다 2006.02.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