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는 집을 짓지 않는다

行雲300 2006. 2. 25. 21:56



아이들도 난리지만
나부터 가만있을 수 없었다
조그만 일벌 한 마리였지만
군대에서 말벌에 쏘여본 나는
일벌조차 용서할 수 없었다
창문을 열어 놓고
출석부를 휘둘러보기도 하고
빗자루로 치기도 했지만
벌은 요리조리 피해 다니더니
어디로 숨었는지 보이지 않았다
할 수 없이 수업을 진행하면서도
금방이라도 벌이 날아와 쏠 것처럼
세포 하나 하나에 신경이 곤두서 있었다

벌이 발견된 것은 며칠 후였다
아이들과 환경미화 준비를 하며
구석구석 쌓인 먼지를 닦아내다가
형광등 갓 위에서 죽은 벌을 발견한 것이다
꽃 한 송이 없는 형광등 갓 위
벌은 먼지를 먹고 견디었을까
거기 먼지만큼이나 온기는 있었을까
꿀 한 방울 만들어내지 못하고
침 한 방 쏘아보지 못하고
벌은 박제가 되어 버렸다
아이들은 벌을 쓰레기통에 버리고
홀가분한 표정으로 수업에 임했지만
그 날 이후로 나는
수많은 벌이 목덜미 뒤에서 날아다니며
침을 쏠 것 같은 불안감에 시달렸다


2002.4.10 行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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