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작시 모음

어처구니를 찾습니다

行雲300 2021. 5. 4. 12:44
어처구니를 찾습니다


조용한 아침의 나라
동방예의지국
*일찍이 아시아의 황금 시절에 빛나던 등불
코리아

넉넉하지는 않아도 인정 많은 사람들
평화롭게 살아가던 우리 옛적은
사람마다, 집집마다, 동네마다
어처구니 하나씩은 갖추고 살았더랬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평화롭던 이 땅에 전쟁의 피바람 불고
저 무도한 왜놈들에게 나라 뺏기고
다시 찾은 나라 두 동강 나더니
사람들 마음 사나워지기 시작했습니다

젊은이가 늙은이에게 삿대질하고
자식이 부모를 핍박하고
매국노가 애국자를 잡아가두고
돈이 사람을 개패듯 패고
도둑놈이 법을 갖고 장난치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온화하던 사람들의 얼굴에는
쌍심지가 켜지고 게거품이 흘렀으며
심지어 네 발로 기며 물어뜯기까지 합니다
사람이 사람에게 괴물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그제서야 사람들은
언제부턴가 어처구니가 없어졌음을 알았습니다
세상이 망하려면 어처구니부터 없어진다고
더 늦기 전에 어처구니를 찾아야 한다고
현자들은 말했습니다

그러자 어떤 정치인이
맷돌의 손잡이가 어처구니라며
사람들을 꾀어서 팔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맷돌 손잡이는 어처구니가 아니었습니다

또 어떤 예술가는
궁궐의 잡상이 어처구니라며
사람들에게 구경시키고 돈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궁궐의 잡상도 어처구니가
아니었습니다

그 일 이후로 세상에는
가짜가 더 많아지기 시작했습니다
가짜 뉴스, 가짜 정치, 가짜 문학, 가짜 종교가
자신이야말로 어처구니라고 혹세무민하며
사람들의 돈을 뜯어 갔습니다

진짜 어처구니는 더더욱 찾기 힘들어졌지만
현자들은 말합니다
사람들이 마음의 눈을 맑게 떠서
거짓에 속지 않으며
돈과 힘으로 사람들을 괴롭히지 않으며
사람이 사람을 하나님처럼 섬길 때
어처구니는 다시 돌아오리라고

아아, 어처구니여
우리 겨레의 어진 마음의 바탕이며
착한 행실의 벼리이며
평화로운 세상의 지킴이여
어서 우리 곁에 돌아와
이 찢어진 우리의 마음과
갈라진 세상을 치유하고 회복시켜 주소서

아름답고 평화로운 어처구니 세상
진리가 사람들을 자유롭게 하고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는
참된 어처구니의 세상 이루어 주소서

ㅡ 어처구니없는 세상이 슬픈 백성 씀

ㅡㅡㅡㅡ
*인도의 시성 타고르의 말.
*맷돌의 손잡이는 '맷손'임.
*궁궐의 잡상은 말 그대로 '잡상'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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