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는 집을 짓지 않는다

가을의 기도

行雲300 2006. 2. 25. 23:13
가을의 기도


기도의 불은 참으로 뜨거웠습니다
사랑하는 아들 딸을 위해
무릎꿇고 하염없이 눈물 흘리며
남들보다 높아지게 하옵소서
부디 시험에 들게 하옵소서
차가운 교문과 담벽도 녹일 듯
뜨거운 기도로 매달리던 어머니들은
정작 시험 끝종이 울리자
아들 딸은 만나지도 못한 채
허전한 맘으로 발길을 돌립니다
억압에서 해방된 젊은 영혼들은
휘황한 유혹과 쾌락의 거리를
저희들끼리 밤새 몰려다닙니다
하지만 시험은 이미 끝났으므로
더 이상 기도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40일 밤낮을 불빛 환하던 교회들도
하나같이 어둠에 잠겨 버렸습니다
십자가에 못박혀 붉은 피 흘리며
낮아지라 다 버리라고 가르쳤던 그분은
오늘도 가난하여 머리 둘 곳이 없습니다

시험이 끝나면 이 나라에는
길고 추운 겨울이 유령처럼 찾아옵니다


2001년 11월 5일(2003.8.19 재수정) 行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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