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하늘 시편지

[김수엽] 유리창

行雲300 2009. 7. 25. 11:28

 

 

  

                      

유리창

-김수엽



이 아침, 내 뜰 안을 팽팽하게 채운 안개

닦으면 닦을수록 일어서는 투명한 벽

잊고 산 얼굴 하나가 물방울로 흘러내리고


밖은, 갓 헹구어 낸 빨래 같은 풍경들

바람 따라 도막도막 박음질로 수런대고

눈 끝엔 절단된 산맥 성큼성큼 매달린다


빗물 또는, 폭설에도 지워지지 않은 문신

갈아 끼운 계절 따라 왜 혹처럼 돋아나는지

아직도 등을 맞대고 선 왼손과 오른손


차라리 내 몸에 걸친 불을 꺼 보았다

길은 사방으로 더 선명하게 뻗어 있고

마침내 무너진 벽으로 달빛 가득 차온다



-1995년도 경향신문 신춘문예 당선작  [김수엽]-유리창

-권갑하 엮음 시집『말로 다 할 수 있다면 꽃이 왜 붉으랴』

  (한국문학도서관,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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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이라 할 것도 없는

유리창

때로는 거울 같이

만상의 증거가 되는 무기체

투명을 향하여

나를 기꺼이 드러내는

그리하여

자연으로의 귀의를 기뻐하는


비 오는 날

수 갈래의 길을 만들어

그 길 위에 자신을 세워놓고

추억의 길로 더듬어 가보는


때로는 너머와의 소통에

장애가 되기도 해서

괄호 밖의 존재가 되기도 하는


詩하늘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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