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창
-김수엽
이 아침, 내 뜰 안을 팽팽하게 채운 안개
닦으면 닦을수록 일어서는 투명한 벽
잊고 산 얼굴 하나가 물방울로 흘러내리고
밖은, 갓 헹구어 낸 빨래 같은 풍경들
바람 따라 도막도막 박음질로 수런대고
눈 끝엔 절단된 산맥 성큼성큼 매달린다
빗물 또는, 폭설에도 지워지지 않은 문신
갈아 끼운 계절 따라 왜 혹처럼 돋아나는지
아직도 등을 맞대고 선 왼손과 오른손
차라리 내 몸에 걸친 불을 꺼 보았다
길은 사방으로 더 선명하게 뻗어 있고
마침내 무너진 벽으로 달빛 가득 차온다
-1995년도 경향신문 신춘문예 당선작 [김수엽]-유리창
-권갑하 엮음 시집『말로 다 할 수 있다면 꽃이 왜 붉으랴』
(한국문학도서관,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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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이라 할 것도 없는
유리창
때로는 거울 같이
만상의 증거가 되는 무기체
투명을 향하여
나를 기꺼이 드러내는
그리하여
자연으로의 귀의를 기뻐하는
비 오는 날
수 갈래의 길을 만들어
그 길 위에 자신을 세워놓고
추억의 길로 더듬어 가보는
때로는 너머와의 소통에
장애가 되기도 해서
괄호 밖의 존재가 되기도 하는
詩하늘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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