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하늘 시편지

[정끝별] 가지가 담을 넘을 때

行雲300 2008. 7. 14. 21:55
    가지가 담을 넘을 때 / 정끝별 이를테면 수양의 늘어진 가지가 담을 넘을 때 그건 수양 가지만의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얼굴 한번 못 마주친 애먼 뿌리와 잠시 살 붙였다 적막히 손을 터는 꽃과 잎이 혼연일체 믿어주지 않았다면 가지 혼자서는 한없이 떨기만 했을 것이다 한 닷새 내리고 내리던 고집 센 비가 아니었으면 밤새 정분만 쌓던 도리 없는 폭설이 아니었으면 담을 넘는다는 게 가지에게는 그리 신명 나는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무엇보다 가지의 마음을 머뭇 세우고 담 밖을 가둬두는 저 금단의 담이 아니었으면 담의 몸을 가로지르고 담의 정수리를 타 넘어 담을 열 수 있다는 걸 수양의 늘어진 가지는 꿈도 꾸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니까 목련 가지라든가 감나무 가지라든가 줄장미 줄기라든가 담쟁이 줄기라든가 가지가 담을 넘을 때 가지에게 담은 무명에 획을 긋는 도박이자 도반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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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골 갔다 돌아오는 길,
          고속도로 길 위에 새겨진 
          검은 타이어 자국을 보았습니다.
          이리저리 비틀거리다 
          중앙분리대 근처에서 끝난,
          다시 갓길에서 멈춘 자국
          그러니까, 저 금단의 분리대를 박고 
          저 금단의 갓길을 넘는다는 게
          어떤 일인지 짐작하고도 남는데 
          자꾸만 감겨오는 눈꺼풀에도
          어쩌지 못하고 달려야했을 
          고단한 삶의 담 하나를 
          아프게 바라보기만 하였습니다.       
          詩하늘 드림  詩하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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