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는 집을 짓지 않는다

속리산 상고대 - 기러기 아빠

行雲300 2006. 2. 25. 23:03
속리산 상고대
-기러기 아빠


아무리 선녀라도 그렇지 애까지 둘 낳은 여자가 불쌍한 남편 혼자 놔두고 휑 하니 가버리기가 그렇게 쉬웠겠어? 애들도 아빠랑 같이 가자고 울며 매달리는데, 선녀도 차마 발길이 안 떨어지는 거야.
그날 따라 겨울바람 얼마나 대단하던지. 선녀는 그냥 애들만 꼭 껴안고 서 있는데, 하얀 날개옷이 바람에 세차게 펄럭이다가 그 서슬에 붕 뜨더니 파란 하늘로 너울너울 날아가고 말았다는 거야. 선녀도 하늘로 날아가면서 많이 울었다는구먼.
나무꾼이 나무 하다가 집에 와서 보니 얼마나 기가 막혀? 예쁜 선녀 마누라 얻어 정은 얼마나 쏟았으며 고생은 또 얼마나 했는데. 이제 한숨 돌릴 만하니까 마누라가 날개옷 들고 덜컥 집을 나간 거야. 아 그래 나가려면 저만 나가지, 애들은 왜 데리고 나가?
나무꾼이 하얗게 눈 덮인 산을 헤매며 선녀 찾아 다니다가 여기 산 꼭대기까지 왔는데, 멀리 벼랑 위에 하얀 날개옷 펄럭이며 선녀가 서 있는 게 보이더래. 그래서 여보 여보 가지 마 하면서 정신없이 벼랑을 기어올라가 보니까, 선녀는 없고 눈꽃 하얗게 핀 상고대 하나 서 있더래.


2001년 6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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