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는 집을 짓지 않는다

밑바닥즐만 물에 잠긴다

行雲300 2006. 2. 25. 22:10
밑바닥들만 물에 잠긴다


가장 낮은 것들만이 물에 잠긴다
세상의 모든 슬픔보다도 더 낮아서
밟히고 또 밟히며 살아온 저 밑바닥들만이
물에도 대책 없이 짓밟히고 있다
세상의 높은 것들은
이럴 때를 기다렸다는 듯
더럽고 못쓰게 된 것들을
죄다 낮은 곳으로 내다버린다
낮은 것들은 그래서 더 아프다
집과 동네를 삼킨 채 열흘이 넘도록 빠지지 않는 물난리로
대피소 차가운 바닥에서 새우잠 자며 사발면으로 연명하는
주름 가득한 할머니의 말라버린 눈물 속에
우리가 버린 슬픔이 있다
허기에 지쳐 잠든 어린것의 코 묻고 반점이 생긴 얼굴에
우리가 잊은 아픔이 있다
헤엄도 칠 줄 몰라 꼼짝없이 떼죽음 당한 저 돼지들의 몸 속에
더러운 우리의 욕망들이 퉁퉁 불어 있다
바닥을 버리고 떠난 우리들 때문에 더 깊은 바닥으로 떨어진
저 낮은 것들의 말없는 분노가
강으로 흐르지도 못하고 썩고 있다
바닥을 메우기보다
바닥을 파서라도 더 높은 곳으로 올라서려는
우리들 그칠 줄 모르는, 그칠 줄을 모르는 욕망 때문에


2002. 8. 17 行雲

'나무는 집을 짓지 않는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실종  (0) 2006.02.25
다시 진달래 능선에서  (0) 2006.02.25
시계  (0) 2006.02.25
벽조목  (0) 2006.02.25
희망 이발소  (0) 2006.02.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