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하늘 시편지

[고재종] 능금밭 앞을 서성이다

行雲300 2006. 10. 17. 12:39
    능금밭 앞을 서성이다 / 고재종 내가 시방 어쩌려고 능금밭 앞에서 서성이며 내가 요렇듯이 바잡는 마음인 것은 저 가시 탱자울의 삼엄한 경비 탓이 아니다 내가 차마 두려운 건, 저 금단의 탱자울 너머 벌써 신신해진 앞강물소리와 벌써 쟁명해진 햇살을 먹고 이 봐라, 이 봐라, 입 딱! 벌게는 주렁거리며 빨갛게 볼을 붉히고 있을 능금알들의 황혼 어느해 가을 저곳에서 머리에 수건을 쓰고, 볼이 달아오를대로 올라선 그 능금알을 따는 처녀들과 그것을 한 광주리씩 들어올리는 먹구리빛 팔뚝의 사내들을 훔쳐본 적이 있다 나는 아직도 저 능금밭에 들려거든 두근두근 숨을 죽이고, 콩당콩당 숨을 되살리며 개구멍을 뚫는 벌때추니라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토록 익을대로 익은 빛깔이 그토록 견딜 수 없는 향기로 퍼지는 저 풍성한 축제를 누가 방자하게 바라볼 것인가 내가 능금밭 앞에서 여전히 두려운 것은 시방 무슨 장한 기운이 서리서리 둘러치는! 저 금기의 신성의 공간, 그것을 내 차마 좀팽이로도 바잡는 마음 다하여 아직도 몰래 훔치고 싶은 이 황홀한 죄, 죄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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