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둥글구나 - 알 34 / 정진규 우리는 똑같이 두 팔 벌려 그 애를 불렀다. 걸음마를 가르치고 있었다. 그 애가 풀밭을 되똥되똥 달려왔다. 한번쯤 넘어졌다 혼자서도 잘 일어 섰다. 그 애 할아버지가 된 나는 그 애가 좋아하는 초콜릿을 들고 있었 고 그 애 할머니가 된 나의 마누라는 그 애가 좋아하는 바나나를 들고 있었다. 그 애 엄마는 아무것도 들고 있지 않았다. 빈손이었다. 빈 가슴 이었다. 사실 그는 그럴 필요가 없었다. 달려온 그 애는 우리들 앞에서 조금 머뭇거리다가 초콜릿 앞에서 바나나 앞에서 조금 머뭇거리다가 제 엄마의 품으로 뛰어들었다. 본시 그 곳이 제자리였다. 알집이었다, 튼튼 하게 비어 있는. 아, 둥글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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