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하늘 시편지

[김정란] 사랑으로 나는

行雲300 2006. 2. 27. 00:19

       사랑으로 나는 / 김정란
 
          사랑으로 나는 내가 보았던 매미 날개와 매미 날개에 머
       무는 햇살과 그 햇살의 순간의 예민한 망설임들을 이해한
       다.사랑으로 나는 내가 보지 못했던 오로라와 그 오로라
       가 우주 먼 곳 태어나지 않은 역사와 맺는 관계를 이해한
       다. 사랑으로 나는 내 내장 깊은 곳까지 박힌 칼들을 이해
       한다. 사랑으로 나는 언젠가 그 칼들이 나를 더 이상 아프
       게 하지 못할 날이 올 것이라는 것을 이해한다.
         사랑으로 나는 죽어가는 세계의 모든 생명들과 이제 막
       태어나는 어린 생명들과 하나가 되고 싶다, 될 것이라고
       믿는다. 될 것이다. 사랑으로 나는 나이며 너이며 그들이
       다. 사랑으로 나는 중심이며 주변이다. 사랑으로 나는 나
       의 상처의 노예이며 주인이다. 사랑으로 나는 나의 상처를
       세계의 상처 위에 겸손하게 포개놓는다. 세계, 나의 아들
       이며 나의 지아비인 세계의 상처 위에. 나처럼 아프고 불
       행한 세계의 상처 위에, 가만히, 다만 가만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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