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는 집을 짓지 않는다

등나무 그늘에서

行雲300 2006. 2. 25. 23:09
등나무 그늘에서


구불구불 휘어지고
그리 굵지도 않은 어린 줄기가
제대로 자랄 것 같지 않았는데
기둥 하나 세워 놓았더니
붙들고서 어느새 자랐는지
제법 넓은 그늘을 만들었다
뜨거운 여름 햇살에 지친 사람들
등나무 푸르른 그늘에 찾아와
즐거이 쉬었다 간다

어린 등나무 줄기처럼
제 몸 하나 바로 못 세우는 아이들에게
나도 기둥이 되어 주고 싶다
아이들 가녀린 몸을 내게 기대어
내 몸을 친친 감고서라도
마침내 믿음직한 줄기로 커 나가서
삶에 지친 가난한 사람들에게
쉴 만한 그늘 되어 주면 좋겠다
보랏빛 꽃그늘 화안한
그런 세상 만들어 주었으면 좋겠다



2001년 10월의 마지막 날에 行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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