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는 집을 짓지 않는다

아무 일도 아니라고

行雲300 2006. 2. 25. 23:08
아무 일도 아니라고


점심 시간만 되면 그 아이는
교무실 앞 복도에서 서성인다

아무 일도 아니라고
그냥 복도 게시물 보는 거라고
그러면서 점심 시간이 끝나도록
친구도 없이 혼자 서성이다가
5교시 종이 쳐야 교실로 간다
점심 시간이 두려운 아이
파리한 얼굴 꾸부정한 어깨로
다른 아이들의 장난이 무서워
혼자 숨을 곳 찾는 가여운 아이

아무 일도 아니라고
그냥 장난으로 그런 건데
별 일도 아닌 걸로 야단친다고
같은 반 아이들은 항변하는데
너무도 당당한 그 아이들 얼굴에서
나는 문득 어릴 적 내 모습을 본다
비실비실 죽어 가는 파리 가지고
장난삼아 날개도 뜯고 다리도 떼며
파르르 떨던 모습 재미있어하던
이제서야 부끄러운 어릴 적 내 모습


2001.11.12. 行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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