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처구니가 없어서
‘어처구니’나 같은 뜻의 말인 ‘어이’의 어원이 ‘맷돌의 손잡이’의 방언이라는 설이 널리 유포되어 있다. 맷돌에 손잡이가 없으면 맷돌을 돌릴 수 없게 되는 데서 ‘어처구니없다’라는 말이 유래되었다는 것이다. 주로 인터넷에서(심지어는 유명 영화의 대사에서까지) 떠도는 이런 어원 풀이는 결론적으로 아무런 근거도 없는 가짜 정보다.
먼저 국어사전을 찾아보면 ‘어처구니’나 ‘어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풀이하고 있다.
어처구니: 「명사」(주로 ‘없다’의 앞에 쓰여)) 엄청나게 큰 사람이나 사물. ≒어이02.
어이: 「명사」((주로 ‘없다’와 함께 쓰여))=어처구니. (국립 국어원의 ‘표준국어대사전’에서)
그러니까 국어사전의 풀이에 따르면 ‘어처구니’나 ‘어이’는 ‘맷돌의 손잡이’와는 아무런 관련도 없는 말인 것이다.
그러면 인터넷에서 떠도는 대로 방언에는 그런 뜻이 있을까?
네이버의 방언사전을 찾아보면 그 어느 지방의 방언에도 ‘어처구니’나 ‘어이’가 ‘맷돌의 손잡이’로 풀이된 곳은 없다. 방언사전뿐 아니라 고어사전이나 각종 어원사전 등을 찾아보아도 ‘어처구니’나 ‘어이’가 ‘맷돌의 손잡이’라고 풀이된 곳은 없다. 생각해 보면 우리들이 읽은 어떤 고소설, 고시조, 고문헌에도 ‘맷돌의 손잡이’를 ‘어처구니’나 ‘어이’라고 표현한 곳은 전혀 없었다.
그러면 맷돌의 손잡이는 정작 무엇이라고 할까? ‘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는 맷돌의 얼개에 대해 다음과 같이 풀이하고 있다.
"맷돌은 돌로 아래짝 위짝을 같은 크기로 만들고, 아래짝에는 한가운데에 수쇠, 위짝에는 암쇠를 끼워 매를 돌릴 때 벗어나지 않게 한다. 그리고 위짝에는 매를 돌리는 맷손을 박는 홈과 곡식을 넣는 구멍을 낸다."
여기는 맷돌의 손잡이를 '맷손'이라고 하고 있다. 이 ‘맷손’이라는 말은 국어사전에도 등재되어 있다. [표준국어대사전]을 찾아보면 ‘맷손’이 다음과 같이 풀이되어 있다.
맷-손01[매쏜/맫쏜] 「명사」매통이나 맷돌을 돌리는 손잡이.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어처구니는 국어사전이나 방언사전, 고어사전, 고문헌 등 그 어디를 찾아보아도 ‘맷돌의 손잡이’와는 관련이 없는 말이다.
한편 ‘어처구니’나 ‘어이’의 어원을 ‘궁궐의 잡상’과는 연관지어 설명하는 어원 풀이도 널리 떠도는데 이 역시 어떤 문헌적 근거도 없는 가짜 정보다.
‘어처구니’나 ‘어이’는 국어사전의 풀이대로 ‘엄청나게 큰 사람이나 사물’일 뿐이다. 그런데 그런 것이 없는 ‘어처구니없다’ 가 왜 ‘너무 뜻밖이어서 기가 막히는 듯하다’를 뜻하게 되었는지는 여전히 의문이지만, 그렇다고 근거 없는 가짜 정보로 어원을 풀이하는 ‘어처구니없는’ 일만은 더 이상 계속되지 않아야겠다. 공자님 말씀대로 모르는 것은 솔직하게 모른다고 하는 것이 진정으로 아는 것이라 할 것이다. (行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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