윔블던의 아이들
1.
2008년의 윔블던 결승은 그 유명한 테니스의 맞수 페더러와 나달이 맞붙은 경기였다.
시종 일관 팽팽한 긴장감이 넘치는 가운데 진행된 경기는 중간에 비도 조금씩 내려 중지되었다가 재개되기를 여러 차례 거듭하는 바람에 경기 시간이 무려 7시간을 넘기는 기록을 세웠다.
이 날의 경기는 우천으로 인한 일시 중지 시간을 빼고서도 4시간 48분의 경기 시간을 기록하여 경기 시간만으로도 윔블던 역사상 유례를 찾기 힘든 장시간 경기로 기록되었을 뿐 아니라 페더러와 나달의 한치 양보 없는 경기 내용 자체로서도 윔블던 역사상 최고의 경기로 꼽힐 만큼 대접전이었다. 이 경기에서 황제 페더러는 떠오르는 왼손 천재 나달에게 풀세트 접전 끝에 마지막 5세트에서 9대 7로 패함으로써 대회 6연패의 신기록을 놓치고 눈물을 흘려야 했고 클레이 코트 최강이었던 나달은 처음으로 잔디 코트마저 점령함으로써 명실상부한 1인자로 올라섰을 뿐 아니라 랭킹에서도 페더러를 밀어내고 당당히 세계 랭킹 1위를 차지하게 된다.
나는 스타 TV에서 저녁부터 중계한 이 경기를 처음부터 끝까지 7시간을 꼬박 앉아서 다 보았는데, 경기가 끝났을 때는 거의 새벽 무렵이었던 것 같다. 정말로 가만히 앉아서 보기도 힘든 경기를 실지로 뛰는 선수들은 얼마나 힘들었을까?
<윔블던 역사상 최고의 명승부로 꼽히는 2008년의 결승 경기 장면>
2.
그런데 테니스 경기 중계를 보고 있으면 선수들 못지 않게 힘든 사람들이 있음을 알게 된다. 그 긴 경기 시간을 100미터 출발 자세로 쪼그리고 앉아 있다가 볼 데드가 되면 공을 주우러 나오는 볼보이, 볼걸 들. 그들이 볼을 주우러 뛰어나오는 것을 처음엔 그저 무심코 보아 넘겼는데, 나중에 보니 그들은 볼을 주울 때마다 늘 그렇게 전력으로 질주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하나의 작은 감동이었다. 볼 하나를 줍기 위해서도 누가 잡으러 오기라도 하는 것처럼 전력 질주하는 파란 눈의 아이들.
30년 가까이 교직에 근무하면서 내가 본 우리 나라 아이들은 어쩌다 심부름이라도 시킬라치면 전력 질주는 커녕 못마땅한 표정을 기어코 지어서는 심부름 시킨 걸(아니, 부탁드린 걸) 후회하게 만드는 일들이 비일비재했다. 언젠가는 수업을 하려는데 분필이 없어 주번 보고 분필 좀 가져오라고 했다가 거의 신경질적으로 반응하던 학생 때문에 얼마나 화가 났던지 참느라 몹시 힘이 든 적도 있었다. 강남의 모 고등학교에서는 교장이 복도의 쓰레기를 줍고 있으니까 지나가는 아이들이 교장 선생님, 저기도 있어요 했다는데.
어디 학교뿐이겠는가? 언제부턴가 우리 사회에는 어른 알기를 우습게 알고 무례한 행동을 일삼는 작은 황제들 때문에 어른들이 아이들 눈치를 봐야 할 지경이 되지 않았는가? 이런 아이들에게 야단은커녕 심부름이라도 잘못시켰다가는 아이들이 반항하는 일 정도는 약과고, 심지어 부모라는 사람들까지 항의를 하는 일도 다반사가 되었다. 얼마 전에는 과학고 아이가 자기를 야단 치는 교사의 뺨을 때렸다던가? 그래서 몇 대 쥐어박았더니 교사를 고소하기까지 했다가 패소했다는데, 더군다나 학교에 근무하다 보니 그런 일을 심심찮게 겪어야 하는 나에게 윔블던의 아이들은 말 그대로 감동이고 경이었으며 충격이었다.
흔히 우리나라를 가리켜 동방예의지국이라 하면서 서양은 우리와 반대로 예의가 부족하고 개인주의적인 사회라고 알고 있지 않았던가? 그런데 윔블던의 아이들이 볼 하나를 줍기 위해서 전력으로 질주하는 것이나 선수들에게 타올을 갖다 줄 때도 땀을 닦는 동안 열중 쉬엇 자세로 기다렸다가 다시 타올을 받아들고 자기 위치로 뛰어 들어가는 모습들, 그리고 경기가 진행되는 동안은 몇 시간이고 불편한 자세로 쪼그리고 앉아 있는 모습들은 개인주의는 커녕 그대로 충직한 종의 모습이 아닌가?
무슨 아르바이트이든가, 아니면 무슨 대가를 바라고서 저렇게 열심히 하는 것아 아닐까? 나는 궁금해져서 인터넷을 검색해 보았다. 윔블던 볼보이, 검색 결과 알게 된 사실은 이랬다.
▲ 윔블던 볼보이
1920년대 초반 메이저대회 사상 최초로 볼보이제도를 도입한 윔블던은 철저하게 훈련받은 볼보이의 전통으로도 유명하다.1946년부터 전문기관에서 뽑은 자원봉사자를 교육시켰다.1977년 볼걸제도가 도입된 뒤 코트의 소녀들은 85년 가장 비중이 큰 경기가 열리는 센터코트에도 처음 투입됐다.
올해에는 윔블던 인근 비콘스쿨과 비숍포드 등 17개 학교에서 전체 600여명의 지원자 가운데 250명을 선발했다. 평균 연령은 15세. 남녀 비율은 같다.2주 동안 코트의 손발이 되기 위해 쏟는 땀은 눈물겹기까지 하다. 전문학교 강습은 2월부터 부활절까지. 이후 대회 개막 전까지는 윔블던에서 하루 2시간씩 일주일에 네 차례 훈련을 받는다. 테니스 규칙 습득은 물론, 왕복달리기에 능숙해야 하고 3분 동안 그대로 서 있어야 하는 능력도 훈련 과정에서 빠지지 않는다.
손을 지면과 직각이 되도록 세운 뒤 볼을 건네고, 반드시 코트 위로 볼을 굴리는 등 절도 있는 동작은 긴 훈련 동안 몸에 밴 모습들. 비가 잦은 대회 기간 하루에도 서너 차례씩 덮개로 코트를 덮었다 걷었다를 반복하는 것도 이때 기른 체력 덕분이다.
대회가 끝나고 이들이 받는 보상은 지난해부터 초록색에서 파란색으로 바뀐 유니폼 단 한 벌뿐. 그러나 세계 최고의 메이저대회에 참가한다는 자부심과 명예 때문에 지원자는 해마다 늘고 있다.( 2007. 6. 26. 서울신문 기사)
<윔블던의 볼보이들>
중계를 보며 세어 본 결과로는 이런 볼보이들이 한 경기에 네트에 두 명, 양쪽 베이스라인 뒤에 2-3명씩 총 8명 정도 되는 것 같았다. 비단 볼보이들뿐만 아니었다. 엄파이어와 함께 경기를 진행하는 라인즈맨들도 경기가 진행되는 몇 시간 동안을 내내 반 무릎 자세로 자기가 맡은 라인 하나만을 뚫어지게 지켜보고 있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시속 200킬로가 넘는 타구의 인과 아웃을 어떻게 정확하게 잡아내겠는가? 중계를 보며 라인즈맨을 세어보니 두 선수의 베이스라인 뒤쪽으로 각각 3명씩 도합 6명이 사이드 라인과 가운데 서비스 라인을 담당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볼보이와 라인즈맨을 합하면 한 경기를 위해 거의 15명 정도가 충직한 종의 자세로 봉사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것이 윔블던이었다.
세계 최고 권위의 테니스 대회인 윔블던은 참가 선수들의 기량이 최고이기도 하지만 뒤에서 말없이 봉사하는 충직한 종들이 있었기에 최고의 대회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일상 생활에서, 자기의 삶에서는 당당한 주인일 그들이 맡은 바 책임을 위해서는 기꺼이 종이 되어서 철저하게 낮아진 자세로 전력을 다하는 모습은 참으로 배울 점이 많았다. 어쩌다 우리 나라의 테니스 경기를 보다 보면 볼보이들이 볼을 주우러 나올 때는 전력 질주는 커녕 나이 잡수신 어르신이 자리에 누워계시다 마지못해 일어나는 것처럼 느리고 성의가 없다. 어릴 때부터 충만한 주인의식으로 무장된 우리 나라의 아이들은 자기 책임을 위해서나 다른 사람을 위해서 종이 된다는 일은 상상도 못한다. 나는 윔블던 결승전을 보다가 오늘날 우리 사회의 가장 큰 문제가 모두가 주인이고 아무도 종이 아니라는 점에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주인이 되는 것은 물론 좋은 일이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 인생의 주인으로서 당당하게 살아야 한다. 그러나 자신이 맡은 책임이나 공동체를 위해서, 혹은 도움이 필요한 누군가를 섬기기 위해서라면 기꺼이 종이 될 줄도 알아야 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오늘날 우리 사회에는 종이 없다. 책임이나 의무보다는 권리만을 주장하고 조금도 손해보지 않으려는 사람들이 더 설쳐대는 것이 우리 사회다. 주인 의식 없이 노예 근성을 가지라는 말이 아니다. 남을 섬기기 위해서, 자기 맡은 일을 위해서 충직한 종이 될 수 없는 사람은 진정한 삶의 주인이 될 수 없다는 것을 말하고 싶은 것이다. 어떻게 보면 남을 섬길 줄은 모르고 섬김 받기만 하려는 것은 주인의식이 아니라 일종의 피해 의식이 아닐까? 어쨌거나 섬기기보다는 섬김받기만 하면서 주인으로만 자란 이 나라의 아이들이 나중엔 어떤 사람이 될 것이며, 이 나라는 또 어떤 나라가 될 것인가 생각하면 답답해질 때가 많다.
3.
나는 테니스를 좋아한다. 주말마다 테니스를 치지 않으면 좀이 쑤실 정도다. 나는 테니스 선수 중에서는 페더러를 제일 좋아한다. 비록 최근에 나달에게 밀리고는 있지만 그의 플레이는 여전히 환상적이고 완벽하며 인간적으로도 그는 너무나 성숙하다. 놀라운 것은 세계 최고의 테니스 선수인 페더러가 무려 6개 국어를 구사한다는 것이다. 그가 나달 때문에 번번이 놓쳤던 프랑스 오픈에서 마침내 2009년에야 챔피언에 오르고서 인터뷰를 할 때 영어와 프랑스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던 모습은 또 하나의 놀라움이었다. 우리 나라 같으면 운동 선수는 공부를 제대로 할 시간도 없을 텐데, 세계 최고의 테니스 선수가 언제 6개 국어까지 거의 완벽하게 구사할 정도로 공부를 했을까?
비단 기량에서뿐 아니라 지적인 면에서나 정신적인 면에서도 세계 최고의 선수인 페더러, 그도 어렸을 때는 볼보이를 하면서 테니스를 배웠다고 한다.
<세계 최고의 선수인 페더러도 어렸을 때는 볼보이부터 시작했다>
2009. 6. 27 行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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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니스코트의 볼보이, 혹은 볼걸(이하 통칭 볼보이)은 아무나 되는 게 아니다.25일 밤 개막한 가장 긴 역사의 윔블던에서는 더욱 그렇다. 남자코트를 호령하는 톱랭커 로저 페더러(스위스)도 볼보이로 출발했다. 라켓을 처음 잡은 8세 때부터 그는 남자프로테니스(ATP) 투어 코트에서 왕복달리기를 하며 보리스 베커(독일)와 피트 샘프라스(미국) 등 당대 최고 스타들의 플레이를 익혔고, 결국 윔블던에서만 메이저 4연패를 일궈냈다.‘윔블던의 꽃’ 볼보이. 그들은 누구일까.
▲ 윔블던 볼보이
1920년대 초반 메이저대회 사상 최초로 볼보이제도를 도입한 윔블던은 철저하게 훈련받은 볼보이의 전통으로도 유명하다.1946년부터 전문기관에서 뽑은 자원봉사자를 교육시켰다.1977년 볼걸제도가 도입된 뒤 코트의 소녀들은 85년 가장 비중이 큰 경기가 열리는 센터코트에도 처음 투입됐다.
올해에는 윔블던 인근 비콘스쿨과 비숍포드 등 17개 학교에서 전체 600여명의 지원자 가운데 250명을 선발했다. 평균 연령은 15세. 남녀 비율은 같다.2주 동안 코트의 손발이 되기 위해 쏟는 땀은 눈물겹기까지 하다. 전문학교 강습은 2월부터 부활절까지. 이후 대회 개막 전까지는 윔블던에서 하루 2시간씩 일주일에 네 차례 훈련을 받는다. 테니스 규칙 습득은 물론, 왕복달리기에 능숙해야 하고 3분 동안 그대로 서 있어야 하는 능력도 훈련 과정에서 빠지지 않는다.
손을 지면과 직각이 되도록 세운 뒤 볼을 건네고, 반드시 코트 위로 볼을 굴리는 등 절도 있는 동작은 긴 훈련 동안 몸에 밴 모습들. 비가 잦은 대회 기간 하루에도 서너 차례씩 덮개로 코트를 덮었다 걷었다를 반복하는 것도 이때 기른 체력 덕분이다.
대회가 끝나고 이들이 받는 보상은 지난해부터 초록색에서 파란색으로 바뀐 유니폼 단 한 벌뿐. 그러나 세계 최고의 메이저대회에 참가한다는 자부심과 명예 때문에 지원자는 해마다 늘고 있다.
최병규기자 cbk91065@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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