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낯익은 담 모퉁이 은행나무 / 김진경 여기 이르기까지 참 오래 꿈꾸었습니다. 참 많은 세상의 고 샅과 모퉁이를 서성거리기도 했고, 그 불 켜진 어느 집엔가 그대가 있으리라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번번이 낙망하여 바 닥을 헛짚는 것처럼 발 밑이 허전하기도 했습니다. 여기 이르 기까지 참 오래 꿈꾸었습니다. 나는 지금 또하나의 고샅, 또 하나의 불 켜진 집 담 모퉁이에 서 있습니다. 그대는 어디에 나 있고 어디에도 없다는 걸 이제는 압니다. 이제 그것이 그 대가 이 세상에 존재하는 방식임을 알 것도 같습니다. 오래도 록 찾아 헤매다 오래 전에 떠났던 집 앞에 이르러 기진하는 것이 목숨 있는 것들의 일임을 이제 알 것도 같습니다. 이 고 샅과 불 켜진 담 모퉁이는 무척 낯이 익습니다. 담 모퉁이에 기진한 은행나무 한 그루 노랗게 물들어 있습니다.
그렇게 은행나무가 노랗게 물들어가고 있습니다. 고생대부터 이어온 그 모습, 그토록 오랜 세월을 견딜 수 있게 해 준 그의 꿈은 무엇이었을까? 살아가면서 욕심 부린 것들이 세상 '어디에나 있고 어디에도 없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일까? 곱게 물들어가는 은행나무 아래 서서 너와 내가 오래도록 함께 할 수 있는 방식을 생각해봅니다.詩하늘 드림 詩하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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