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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알 힐티의 '가난한 밤의 산책'에서

行雲300 2006. 2. 26. 00:46
1월 16일: 우리들의 교육자나 선교사가 그렇게 하듯이 사람을 무엇보다 어떤 신앙으로 인도하려 한다는 것은 대개의 경우 전혀 무익한 일이다. 그러니까 그들은 전혀 성과를 올리지 못하는 것이다. 우선 사랑을 인식시켜야 하는 것이다. 그러면 자연히 사랑하는 것에 대한 신앙이 사람의 마음에 스며드는 것이다.

4월 20일: 이 세상의 모든 선만을 보도하고, 악이나 사소한 일에는 일체 주의를 돌리지 않는 신문이나 평론 잡지가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러면 이 세상에는 얼마만큼 많은 선행이 일어나고, 특히 처음에는 사악한 것도 나중에는 선으로 변하고 선에 봉사하는 일이 얼마나 많은가를 알게 될 것이다.

6월 1일: 남에게 가르치는 것을 자신이 실행하도록 하라.
청년 시대에는 배우고 가르치는 것이 그 본분이지만, 많아지는 나이와 함께 실행이 한층 앞으로 나서지 않으면 안 된다. 마지막에는 각자가 다 저마다 무슨 좋은, 그리고 진실한 사상의 명백한 표현이 되어 있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지 않으면 인생을 헛 산 것이 된다.

8월 5일: 매일 아침을 언제나 좋은 생각을 가지고서 시작하라. 절대로 근심이나 한숨으로 시작하지 말고. 그러면 구름을 흩어 없애는 얼마 간의 햇빛을 하루 종일 갖게 되리라.

11월 2일: 죽음이 무섭게 생각되는 것은 원래 그것이 새로운 것, 익숙지 못한 것, 특히 미지의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육체를 차츰 많아져가는 그 약점과 함께 내버릴 수가 있다는 것은 자기의 영생을 확신하는 정신적인 인간에게 있어서는 결코 불쾌한 것이 아니다. 죽는다는 것은 훨씬 유리한 조건 하에서 여태까지 쌓아온 모든 경험에 의거하여 삶을 다시 한 번 시작해도 좋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더구나 거기에다 또지금보다도 훨씬 나은 사회에서. 그렇다면 왜 죽음을 무서워할 것인가?

11월 14일: 그것을 직면하고 있을 때에 가장 괴롭게 여겨진 시기가 가장 좋은 시기로 추억에 남는 것이다. 왜냐 하면 그 시기에 우리들이 성장하였든가, 혹은 그 괴로움이 없었더라면 언제까지나 남았을 자신이 결점을 벗어버렸기 때문이다.

11월 24일: 돈, 명예, 그리고 향락, 신을 대신하여 인간을 지배하는 이 세 가지 힘과 일단 관계를 끊어 버리면 분명히 자유를 느낄 것이다. 그러나 그 다음 최초의 순간은 환멸이다. 왜냐 하면 자유는- 개인적 자유든 정치적 자유든- 소극적인 것에 그치지 않고 그것만으로는 아무런 만족도 주지 않기 때문이다. 그것을 위하여 인간은 만족과 마찬가지로 적극적인 사명을 가질 필요가 있다.

11월 30일: 어느 사람의 생애 최고의 날이란 자기의 역사적인 사명, 즉 신이 이 지상에서 그를 쓰려고 하는 목적을 분명히 알게 되고, 또 여태까지 인도되어 온 모든 길이 그 곳으로 통한다는 것을 깨닫는 날이다.

12월 14일: 우리들의 현저한 내적 발전이나 진보는 모두 많든 적든 그 전에 겪은 엄한 시련의 결과이다. 그러므로 사실은 시련을 달가워하여야 하는 것이다. 적어도 시련의 한가운데에서도 영혼의 평정한 한 점을 끝까지 유지하고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 시련은 우리들 위에 꽃피어나올 새로운 참된 행복의 전조이기 때문이다.

12월 31일: 마지막으로 바라는 것은 보다 많은 사랑이다. 지금으로는 이것뿐이다. 그리고 이것이 육체에 관한 것은 제외하고, 현재의 삶과 미래의 삶과의 커다란 차이가 될 것이다. 그리고 보다 많은 사랑이 있었다면 당신은 이 지상 시대의 거의 모든 고뇌와 고난을 면할 수가 있었을 것이다.
[사랑은 모든 것을 이겨 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