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지혜

전습록(傳習錄)에서

行雲300 2006. 2. 26. 00:19
*옛 성인과 현인이 사람을 가르친 방법은 의사가 환자를 치료하는 방법과 비슷했다. 병을 치료하려면 병세에 따라 처방을 하고 환자의 체력과 발열 상태 등 병세를 종합적으로 판단하는데, 그것에 따라 처방을 바꾸어 나간다. 요컨대 질병을 치료하는 것이 목적이지 처음부터 정해진 처방 따위가 있는 것은 아니다. 만약 한 가지 처방으로 고집한다면 도리어 환자를 죽이고 말 것이다. (전습록의 서에서)

*이(理)라는 것은 모두 마음 속에 있는 것이며 마음이 곧 이인 것이다. 이 마음이 사욕에 싸이지 않은 상태가 천리(天理)이며 그 이상 무엇 한 가지도 밖에서 첨가될 필요가 없는 것이다.(心卽理也 此心無私欲之蔽 卽是天理) 이 천리 그대로의 마음을 발휘하여 아버지를 모신다면 그것이 곧 효이고 임금을 모신다면 그것이 곧 충이며 또 친구와 교제하고 백성을 다스린다면 그것이 곧 신이요 인인 것이다. 그러므로 이 마음에서 인욕을 제거하고 천리를 보존토록 노력만 한다면 그것으로 족한 것이야.(只在此心 去人欲存天理上用功 便是)- 전습록 상권(명문당본 26쪽)

*지(知)란 행(行)의 본의이며 행이란 지의 공부인 것이야. 또 지란 행동의 시작이며 행이란 지의 완성인 것이다.(知是行的主意, 行是知的功夫, 知是行之始, 行是知之成)- 36쪽, 87쪽

*이(理)가 발휘되어 눈으로 볼 수 있는 것을 글[文]이라고 하는 것이고_. 또 글에서 숨어져 있어서 볼 수가 없는 것을 이(理)라고 한다. 이것들은 오직 한 가지인 것이야.(理之發見可見者,謂之文. 文之隱微不可見者, 謂之理)- 49쪽

*마음은 하나만 있을 뿐이다. 마음에 개인적인 것이 섞여 있지 않은 것을 도심(道心)이라 하고 인위적인 것이 섞여 있는 것을 인심(人心)이라고 하느니라. 인심이 올바르게 놓여져 있는 것이 곧 도심이며, 도심이 올바름을 잃고 있는 것이 곧 인심인 것이다. 처음부터 이 두 가지 마음이 있는 것은 아니다. (心一也 未雜於人 謂之道心 雜以人僞 謂之人心 人心之得其正者 卽道心 道心之失其正者 卽人心 初非有二心也)- 51쪽

*마음이 곧 도요, 도가 곧 하늘이다. 마음을 알면 곧 도를 알고 하늘을 알게 되는 것이다. (心卽道 道卽天 知心 則知道知天)- 136쪽

*중(中)이 아닌 때가 없어야만 비로소 대본(大本)의 중이라고 하는 것이며 화(和)가 아닌 때가 없어야만 비로소 달도(達道)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오직 천하의 지성(至誠)을 지닌 사람만이 천하의 대본을 세울 수 있는 법이니라. (無所不中 然後謂之大本, 無所不和 然後謂之達道, 惟天下之至誠 然後能立天下之大本)- 150쪽

*지식이 넓어질수록 사람의 욕망은 더욱 불어나고 재질과 능력이 많을수록 천리에는 더욱 어둡게 되는 법이니라. (知識愈廣, 而人欲愈滋, 才力愈多, 而天理愈蔽)- 179쪽

*성인은 이 일(아집이라는 사심과 물욕이 사람들의 마음을 타락시킨 것)을 걱정하여 천지 만물 일체의 인(仁)을 외치면서 세상 사람들을 교화하고 사람들 모두가 사심을 극복하고 마음의 벽을 허물어 마음의 본체로 돌아가도록 가르쳤다.
-- (중략)-- 생각건대 그것은 마음도 학문도 순수하여 만물 일체의 인(仁)을 체현하고 있음으로써 정신의 교류, 의기의 통달이 되어 있었던 것이며, 남과 자기, 물(物)과 아(我)의 구별 등이 존재하지 않았음이 틀림없느니라. 그것을 인간의 몸에 비유하면 눈은 보고, 귀는 듣고, 손은 들고, 다리는 걸음으로써 몸의 활동을 가능케 하는 것과 같다. 눈은 소리를 못 듣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을 뿐 아니라 반드시 귀가 들은 방향으로 돌린다. 다리는 물건을 들 수 없음을 부끄러워하지 않을 뿐 아니라 반드시 손이 접촉한 쪽으로 걸어간다. 왜일까? 그것은 몸 속에 생기가 충만하고 구석구석에까지 혈맥이 통하고 있으므로 하찮은 자극이라든가 호흡에도 곧 감응하고 무언 중에 서로 통하는 미묘한 기능이 갖추어져 있기 때문이다. 성인의 학문이 아주 간이하며, 알기 쉽고 행하기 쉬우며 더구나 한번 배우면 무럭무럭 성장한다는 것은 그런 이유임에 다름 아니다. 그 근본은 마음의 본체로 돌아가는 것이지, 지식,기능의 미묘함은 문제삼지 않는 데에 있었던 것이다. ---(중략)---
패도를 주장하는 무리들은 선왕의 도를 교묘하게 흉내내면서 외면을 꾸미는 데 그 실은 자신의 욕망을 채우고자 하는 것이며 이런 사상이 일세를 풍미하게 되어 성인의 도는 황야에 매몰되고 말았다. 사람들은 앞을 다투어 부강을 위한 이론을 찾아 상대방을 짓밟기 위한 모략을 꾸미고, 하늘을 속이어 한때의 이익을 얻으며, 그것에 의해 명성을 올리고자 했던 관중, 상앙, 소진, 장의 등의 무리가 수다하게 출현하게 된 것이다.
--(중략) -- 이처럼 성인의 학문이 날로 멀어져서 잊혀져 감과 동시에 공리를 추구하는 풍조가 한층 더 강해졌다. --(중략) -- 그리하여 오늘날에는 공리의 해독이 사람들 마음과 골수에까지 침투했고 그것이 습성화되었으며 이미 천 년의 세월이 흘렀다.그 때문에 세상에는 지식을 자만하고 세력을 과시하며 이익을 다투고 기능을 사랑하며 명성을 구하는 무리들만 늘어나게 된 것이다. - 전습록 중권, 고동교에게 보낸 답신 중에서

*사람들에게 학문을 가르치는 경우도 상대방의 능력에 따라 가르치지 않으면 안 된다.
예를 들자면 나무가 아직도 싹에 불과할 때는 약간의 물만을 주어야 하고, 싹이 다시 자라나면 물을 더 주어야 하는 것과 같다. 한 움큼의 굵기에서부터 한 아름 굵기의 나무에 이르기까지 물을 주는 작업도 모두 그 나무의 능력이 미치는 정도에 따라서 해야만 되는 것이다. 만약 조그만 싹이 있는데 한 통의 물을 모두 부어 버린다면 그 싹은 물에 잠기어 녹아지게 될 것이다. -전습록 하권(명문당본 310쪽)에서

*성인은 모르는 게 업다고 하거니와 그것은 오직 천리를 보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 하지 못하는 게 없다고 하거니와 그것 역시 오직 천리를 보존하고 있기 때문이다.(聖人無所不知 只是知箇天理, 無所不能 只是能箇天理)---(중략)--- 다만 성인은 알 필요가 없는 것은 알려고 하질 않는다. 마땅히 알아야 할 일에 대해서는 스스로 사람들에게 묻기를 잘한다. - 312~ 313쪽

*기질도 역시 본성이며 본성 또한 기질인 것이다. (氣亦性也, 性亦氣也) 다만 그 근본을 반드시 알아야만 합당하게 되는 것이다. - 334쪽

*그대들은 수행을 함에 있어, 무엇보다도 억지로 속히 발전시키고자 하지 말아야 한다. 빼어난 지혜를 지닌 사람은 극히 적으므로, 학문하는 사람은 성인의 논리로 단번에 뛰어들지 말아야 한다. 한번 일어났다가는 한번은 수그러지고, 한번은 전진했다가 한번은 후퇴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공부의 절차이다. (諸君功夫 最不可助長 上智絶少 學者無超人聖人之理 一起一伏 一進一退 自是功夫節次)- 336쪽

*일반 백성들과 함께 하는 것, 그것을 동덕이라고 하며, 일반 백성들과 달리 행동하는 것, 그것을 이단이라고 하느니라. (與愚夫愚婦同的 是謂同德 與愚夫愚婦異的 是謂異端)- 371쪽

*사람의 양지란 바로 풀과 나무라든가 기와와 돌의 양지와 같은 것이니라. 만약 풀과 나무라든가 기와와 돌 등에 양지가 없다면 그것들은 풀과 나무와 기와와 돌로서 존재하지 못할 것이다.
어찌 풀과 나무와 기와와 돌뿐이겠는가? 하늘과 땅도 사람의 양지가 없다면 하늘과 땅이 될 수 없을 것이니라. 이처럼 천지만물은 사람과 일체이다.(蓋天地萬物 與人原是一體)- 375쪽

*지극히 정성됨이란 실제적 이(理)이며 그것이 바로 양지(良知)인 것이다. 실제적 이(理)의 묘한 작용과 활동이 바로 신(神)이며, 그 싹이 터서 움직이는 곳이 바로 빌미[幾]인 것이니라. 정성됨과 신(神)과 빌미를 지니고 있는 사람이 곧 성인이고_. (誠是實理 只是一箇良知 實理之妙用流行 就是神 其萌動處 就是幾 誠神幾曰聖人)- 387쪽 빌미=기미?

*성현들께서는 오로지 자기자신을 위하는 학문을 함으로써 자신의 수행은 중요시하지만 그 수행의 효험은 중요시하지 않느니라. 인(仁)이란 만물을 동체로 보는 것이야.(聖賢只是爲己之學 重功夫 不重效驗 仁者 以萬物爲體)- 390쪽

*칠정(七情) 역시 자연스런 흐름에 따르기만 한다면 모두가 양지의 작용인즉 선하고 악함으로 구별할 수는 없는 것이지. 다만 그것들이 어떤 것에 집착하는 점이 있어서는 안 된다. 집착하는 것을 욕심이라고 하는데 그 욕심이 생기면 양지를 덮어씌우는 결과가 되느니라. (七情順其自然之流行 皆是良知之用 不可分別 善惡但不可有所着 七情有着 俱謂之欲 俱爲良知之蔽)- 397쪽

*어떤 사람이 다시 물었다.
"'감정이 드러나기 이전'도 화(和)가 아닌 적이 없고, '감정이 드러난 이후'도 중(中)이 아닌 적이 없다는 것은 종소리에 비유하건대, 두드리기 전에도 소리가 없었다고 말할 수 없고, 두드린 다음에도 종소리가 있다고 말할 수 없는 것과 같은 것인 듯합니다. 결국 두드리고 두드리지 않은 구별만이 있다는 것에 불과합니까?"
선생님께서 말했다.
"두드리기 전에도 종은 경천동지(驚天動地)이고 두드린 다음에도 또한 오직 적천막지(寂天寞地)인 것이다." (未구(手+口)時 原是驚天動地 旣구(手+口)時 只是寂天寞地也)- 421쪽

*태산이 높더라도 평지의 광활만 같지 못하리라. 평지에 눈에 띌 만한 무엇이 있겠느냐?(泰山不如平地大. 平地有何可見)- 431쪽

*선도 없고 악도 없는 것이 마음의 본체이고, 선도 있고 악도 있는 것이 뜻의 활동이며, 선을 알고 악을 아는 것이 양지이고, 선을 행하고 악을 제거하는 것이 격물이라고 선생님께서 말씀하셨지.(無善無惡是心之體 有善有惡是意之動 知善知惡是良知 爲善去惡是格物- 四句敎(四字敎)- 435쪽

*양지란 곧 역과 같은 것이다(良知卽是易). 그 성격은 자주 변화하여 가만 있지 아니하고 늘 변화하면서 천지 사방을 두루 돌아다니든가 하면 위에 있든지 아래에 있든지 일정치가 않으며 강(剛)과 유(柔)가 서로 뒤바뀌는 등 일정한 표준을 정할 수가 없다. 오직 그 변화를 따라서 좇아가는 수밖에 없은즉 이런 양지를 어떻게 파악할 수 있겠느냐?- 47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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