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식적으로 생각해 보자구요>
상식이 통하는 사회, 상식적인 인간, 상식적으로 생각하기,...... 요즘 사람들은 상식이란 말을 즐겨쓰고 있다. 말인즉슨 좋다. 상식이 통하는 사회가 되면 정말 얼마나 좋겠는가? 사회 전체가 상식 하나로 통하니 사회 갈등도 줄어들 것이고 사람들 사이의 관계도 더욱 원만해질 것이다. 정말로 상식이 통하기만 한다면 세상살이도 살 만한 것이 될 것이다.
그런데 어쩌다가 우리 사회는 상식이 통하지 않는 사회가 된 것일까? 생각하던 중 문득 과연 상식이란 게 무엇인가, 상식이란 게 정말로 있기는 한 것인가 하는 의문이 생겼다. 국어 사전에는 상식을 '보통 사람이 가지고 있는, 또는 가져야 할 지식이나 판단력'이라고 풀이하고 있었다. 참으로 상식적인 풀이다. 도대체 누가 보통 사람이며 보통 사람은 어떤 것들에 대해 어느 정도의 지식을 가져야 하는지 이 설명만으로는 아무것도 알 수가 없는 것이다.
도대체 보통 사람은 누구인가? 고등학교만 나오면 보통 사람인가, 대학을 나와야 보통 사람인가? 대학을 나와야 보통 사람이라면 고등 학교만 나온 사람은 몰상식한 사람인가? 고등학교만 나와도 보통 사람이라면 대학을 나온 사람은 무조건 다 상식적인 사람인가? 경제적으로는 중산층은 되어야 보통 사람인가? 그렇다면 서민층이나 빈곤층은 보통 사람 축에 못 드는 것인가? 도대체 보통 사람이란 개념의 기준은 무엇인가?
여기에 두 사람의 보통 사람(적어도 스스로는 그렇게 생각하는)이 있다. 한 사람은 지금이 정보화 시대이므로 교육 행정 정보화 시스템(NEIS)을 시행하는 것은 상식이라고 말한다. 다른 한 사람은 국가가 개인의 신상 정보를 동의 없이 집적하는 것은 민주 국가에서는 상식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반대한다. 정반대의 주장을 하면서 두 사람은 각각 자기의 주장이 상식적이고 다른 사람의 주장은 몰상식적이라고 말한다. 정말로 상식이라는 말처럼 모호하고 모순된 말도 없는 것 같다.
무엇이 상식인지 규정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상식이라는 말을 즐겨쓴다. 그런데 가만히 보면 사람들이 말하는 상식은 정말로 검증된 상식이라기보다는 단순한 자기 생각인 경우가 많다. 우습지 않은가? 자기 생각이 어째서 보통 사람의 상식이며 자기 생각과 다르면 상식이 아니라는 말인가? 자기 생각이 정말로 보통 사람을 대표하는 상식인지 검증해 본 적이 있는가?
문제는 사람들이 자기 주장을 합리화하기 위해 상식이라는 말을 함부로 사용한다는 것이다. 심지어는 다른 사람에겐 가장 비상식적인 것으로 들리는 주장을 하는 사람도 자기 자신은 상식적이라고 말한다.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굿모닝 시티, 여당 대표가 4억 2천만원을 받아 선거 자금으로 사용했다고 해서 문제가 되고 있다.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고 여론이 들끓었다. 그 무렵 한 언론사에서 '당신에게 10억을 주면 부정을 저지를 수 있겠느냐'는 설문 조사를 했더니 우리 국민의 70%가 10억이라면 할 수 있다고 했다. 여당 대표의 4억 2천만원을 가지고 상식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분개하던 바로 그 국민들의 대답이다.
이런 식의 상식이라면 없는 것이 낫지 않겠는가? 다른 사람은 몰상식으로 비난하면서 자기는 상식적이라고 합리화하기 위한 상식, 그런 것이 상식이라면 그 잘난 상식 때문에 사회의 갈등은 오히려 더 커질 것이고 문제는 복잡해지기만 할 것이다. 상식을 말하는 것 자체가 몰상식이 되는 현실, 배타성과 독선을 포장하기 위한 상식, 갈등을 해결하기보다는 증폭시키는 상식이라면 차라리 없는 것이 낫지 않겠는가?
중요한 것은 무엇이 상식인가에 대한 공개적 논의와 사회적 합의일 것이다. 요즘 TV를 보면 각종 토론 프로가 성행하고 있다. 문제에 대해 서로 다른 의견을 가진 쌍방을 토론자로 내세워 문제에 대해 깊이 접근하고 해결책을 모색한다는 장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프로그램들에는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생각이다. 서로 다른 다양한 의견을 듣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결과 누구의 의견이 옳은 것인지 판결하는 과정이 없고 또 토론자 자신들도 결코 승복하려 하지 않다 보니 결과적으로는 옳고 그름을 누구도 말할 수 없는 양시론 내지 양비론으로 흐르고 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와 같은 토론 프로그램들이 표면적으로는 다양한 개인 또는 계층의 의견 청취와 수렴을 명분으로 내세우면서도 우리 사회가 극단적 가치 상대주의 내지 허무주의로 흐르도록 조장한 면도 없지는 않을 것이다.
다양한 의견이 통하는 사회, 말은 좋다. 하지만 목소리만 크면 통한다거나 자기 의견이 틀렸더라도 승복하지 않는 사회가 된다면 차라리 하나의 의견 아래 일사 불란한 모습을 보이는 것만 못하다. 문제는 '룰(rule)'이다. 토론에서도 룰을 정하고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 룰에 따라서 자기 의견이 잘못되었을 때는 승복하여야 한다. 다양한 의견도 룰에 어긋나지 않는 범위에서 다양해야 한다. 운동 경기에서 선수들이 다양한 기술과 개인기를 선보일 수는 있어도 반칙을 해서는 안 되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런데 지금 우리 사회에서는 축구에서 손으로 골을 넣고도 개인기라고 우기는 것 같은 일이 흔히 일어나고 있다. 나는 이와 같은 어거지가 우리 사회의 발전을 정체시키고 망치는 병인이라고 생각한다.
민주화도 좋고 개인의 자유도 좋지만 어거지가 통하는 사회가 되어서는 안 된다. 법치의 원칙이 없는 민주주의란 있을 수 없다. 그런데 법을 무시하거나 어거지를 부려 가면서 자유와 권리만을 주장한다면 그것은 민주주의가 아닐 것이다. 불만이나 갈등이 있을 때에라도 법은 지켜야 하는 것이 사회의 룰이 되어야 한다. 소크라테스가 말했듯이 악법도 법이기 때문이다. 형평성이니 생계니 하며 권리를 주장하는 것도 법과 질서를 지킨 이후의 문제일 것이고 악법이라도 고치기 전까지는 지켜야 할 것이다.
법과 함께 또 우리가 지켜야 할 룰로서 도덕적 윤리적 가치 기준이 있을 것이다. 법이란 세상의 문제를 풀어나가기에는 너무 좁은 틀이다. 사회에는 법뿐만 아니라 도덕과 윤리도 필요한 것이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서는 이와 같은 도덕과 윤리가 무너지고 말았다. 어쩌면 이에는 시류에 영합해 온 언론과 방송의 책임도 클 것이다. 도덕을 세우기보다는 무너뜨리는 프로그램을 무책임하게 방송하고 어른들은 몰라요 어쩌구 하며 청소년들의 정서와 기호에만 영합하여 사회적 권위를 무너뜨린 책임이 언론에 어찌 없다 할 것인가? 세계적으로 개인의 다양성이 최대한 존중되고 자유 민주 국가의 전범이라 할 수 있는 미국에서 대통령이 성서에 손을 얹고 취임 선서를 하는 것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할 것이다. 방송뿐 아니라 학계, 교육계 등 사회 모든 부분에서 무너진 도덕 윤리를 바로 세우는 데 가장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적어도 법과 도덕이 우리 사회의 최소한의 공통 기준으로 살아 있을 때 상식이라는 말이 가능한 것 아니겠는가? 나는 이것이 사회의 기본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오늘날 사회는 법과 도덕이 가장 뒷전인 사회가 되어 버리고 말았다. 먹고 사는 일이 급할 뿐, 법은 걸리지 않는 한에서 이용하면 된다는 생각, 도덕이라는 것은 구시대적인 낡은 것이라는 생각이 결과적으로 먹고 사는 일까지 어렵게 만들고 있다. 법과 도덕이 가장 뒷전이기는 학교도 마찬가지다. 공부만 잘하면 되고 교칙이나 예절은 그리 중요시되지 않는 교육, 교육 과정 자체가 입시 과목 위주로 편성되어 인성 교육이나 준법 교육 같은 건 조회 시간이나 종례 시간에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현실, 그래서 법과 도덕을 가장 뒷전으로 생각하는 잘못된 태도는 바로 학교에서 '길러지는' 것이다.
나는 학교에서 인성 교육과 준법 교육, 생활 교육 등을 잠재적 교육 과정이 아닌, 명시적 교육 과정으로 편성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교육의 내용을 국가가 일방적으로 편성하고 통제해서 전체주의의 함정에 빠진다면 안 되겠지만, 그렇지 않은 범위 내에서 수업 시간 중에 '룰'을 가르칠 수 있도록 인성 교육을 교육 과정화하여야 한다. 그리하여 우리 아이들을 법과 도덕을 중히 여기고, 공동체의 생활 질서를 지키며, 합리적으로 주장하되 승복할 줄도 아는 시민으로 길러야 할 것이다. 목소리만 크면 이기는 천민 자본주의, 천민 민주주의가 아니라 진정한 민주 시민으로서 우리 아이들을 길러야 할 것이다. '룰'을 지킬 줄 아는 시민 계급이 없다면 민주주의도, 상식이 통하는 사회도 없는 것이다. 이런 면에서 얼마 전 서울대 김성곤 교수가 초등학교 1학년 1년만이라도 교과 교육을 하지 말고 인성 교육만을 하자고 한 주장에 나는 적극 찬성한다.
상식적인 생각만이 옳은 것은 아닐 것이다. 때로 사회에는 상식을 뛰어넘는 창의적인 생각을 해 내는 사람도 있어야 할 것이다. 상식이 사회를 유지하는 것이라면, 상식을 뛰어넘는 생각은 사회를 발전시키는 데 없어서는 안 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조선 시대의 실학자들의 생각이나 라이트 형제가 하늘을 날았던 일들이 어찌 당시로서 상식적이었다 할 수 있었겠는가? 그러나 역사의 진보는 상식이 건재하는 사회에서 가능한 것이다. 상식이 무너지고 사회가 혼란한 다음에야 진보 또한 어찌 힘을 얻겠는가?
지금 우리 사회에서 가장 시급한 일은 사회적 룰을 만드는 일이다. 자기 주장만을 상식이라고 주장할 것이 아니라 누구나 따를 수 있는 룰을 기초로 상식을 세워야 할 때다. 룰을 지키는 것이 상식이 되는 가장 상식적인 사회를 만들기 위해 학계와 교육계, 정치계 등 사회 전체가 함께 노력해야 할 때다.
상식이 통하는 사회, 상식적인 인간, 상식적으로 생각하기,...... 요즘 사람들은 상식이란 말을 즐겨쓰고 있다. 말인즉슨 좋다. 상식이 통하는 사회가 되면 정말 얼마나 좋겠는가? 사회 전체가 상식 하나로 통하니 사회 갈등도 줄어들 것이고 사람들 사이의 관계도 더욱 원만해질 것이다. 정말로 상식이 통하기만 한다면 세상살이도 살 만한 것이 될 것이다.
그런데 어쩌다가 우리 사회는 상식이 통하지 않는 사회가 된 것일까? 생각하던 중 문득 과연 상식이란 게 무엇인가, 상식이란 게 정말로 있기는 한 것인가 하는 의문이 생겼다. 국어 사전에는 상식을 '보통 사람이 가지고 있는, 또는 가져야 할 지식이나 판단력'이라고 풀이하고 있었다. 참으로 상식적인 풀이다. 도대체 누가 보통 사람이며 보통 사람은 어떤 것들에 대해 어느 정도의 지식을 가져야 하는지 이 설명만으로는 아무것도 알 수가 없는 것이다.
도대체 보통 사람은 누구인가? 고등학교만 나오면 보통 사람인가, 대학을 나와야 보통 사람인가? 대학을 나와야 보통 사람이라면 고등 학교만 나온 사람은 몰상식한 사람인가? 고등학교만 나와도 보통 사람이라면 대학을 나온 사람은 무조건 다 상식적인 사람인가? 경제적으로는 중산층은 되어야 보통 사람인가? 그렇다면 서민층이나 빈곤층은 보통 사람 축에 못 드는 것인가? 도대체 보통 사람이란 개념의 기준은 무엇인가?
여기에 두 사람의 보통 사람(적어도 스스로는 그렇게 생각하는)이 있다. 한 사람은 지금이 정보화 시대이므로 교육 행정 정보화 시스템(NEIS)을 시행하는 것은 상식이라고 말한다. 다른 한 사람은 국가가 개인의 신상 정보를 동의 없이 집적하는 것은 민주 국가에서는 상식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반대한다. 정반대의 주장을 하면서 두 사람은 각각 자기의 주장이 상식적이고 다른 사람의 주장은 몰상식적이라고 말한다. 정말로 상식이라는 말처럼 모호하고 모순된 말도 없는 것 같다.
무엇이 상식인지 규정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상식이라는 말을 즐겨쓴다. 그런데 가만히 보면 사람들이 말하는 상식은 정말로 검증된 상식이라기보다는 단순한 자기 생각인 경우가 많다. 우습지 않은가? 자기 생각이 어째서 보통 사람의 상식이며 자기 생각과 다르면 상식이 아니라는 말인가? 자기 생각이 정말로 보통 사람을 대표하는 상식인지 검증해 본 적이 있는가?
문제는 사람들이 자기 주장을 합리화하기 위해 상식이라는 말을 함부로 사용한다는 것이다. 심지어는 다른 사람에겐 가장 비상식적인 것으로 들리는 주장을 하는 사람도 자기 자신은 상식적이라고 말한다.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굿모닝 시티, 여당 대표가 4억 2천만원을 받아 선거 자금으로 사용했다고 해서 문제가 되고 있다.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고 여론이 들끓었다. 그 무렵 한 언론사에서 '당신에게 10억을 주면 부정을 저지를 수 있겠느냐'는 설문 조사를 했더니 우리 국민의 70%가 10억이라면 할 수 있다고 했다. 여당 대표의 4억 2천만원을 가지고 상식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분개하던 바로 그 국민들의 대답이다.
이런 식의 상식이라면 없는 것이 낫지 않겠는가? 다른 사람은 몰상식으로 비난하면서 자기는 상식적이라고 합리화하기 위한 상식, 그런 것이 상식이라면 그 잘난 상식 때문에 사회의 갈등은 오히려 더 커질 것이고 문제는 복잡해지기만 할 것이다. 상식을 말하는 것 자체가 몰상식이 되는 현실, 배타성과 독선을 포장하기 위한 상식, 갈등을 해결하기보다는 증폭시키는 상식이라면 차라리 없는 것이 낫지 않겠는가?
중요한 것은 무엇이 상식인가에 대한 공개적 논의와 사회적 합의일 것이다. 요즘 TV를 보면 각종 토론 프로가 성행하고 있다. 문제에 대해 서로 다른 의견을 가진 쌍방을 토론자로 내세워 문제에 대해 깊이 접근하고 해결책을 모색한다는 장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프로그램들에는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생각이다. 서로 다른 다양한 의견을 듣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결과 누구의 의견이 옳은 것인지 판결하는 과정이 없고 또 토론자 자신들도 결코 승복하려 하지 않다 보니 결과적으로는 옳고 그름을 누구도 말할 수 없는 양시론 내지 양비론으로 흐르고 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와 같은 토론 프로그램들이 표면적으로는 다양한 개인 또는 계층의 의견 청취와 수렴을 명분으로 내세우면서도 우리 사회가 극단적 가치 상대주의 내지 허무주의로 흐르도록 조장한 면도 없지는 않을 것이다.
다양한 의견이 통하는 사회, 말은 좋다. 하지만 목소리만 크면 통한다거나 자기 의견이 틀렸더라도 승복하지 않는 사회가 된다면 차라리 하나의 의견 아래 일사 불란한 모습을 보이는 것만 못하다. 문제는 '룰(rule)'이다. 토론에서도 룰을 정하고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 룰에 따라서 자기 의견이 잘못되었을 때는 승복하여야 한다. 다양한 의견도 룰에 어긋나지 않는 범위에서 다양해야 한다. 운동 경기에서 선수들이 다양한 기술과 개인기를 선보일 수는 있어도 반칙을 해서는 안 되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런데 지금 우리 사회에서는 축구에서 손으로 골을 넣고도 개인기라고 우기는 것 같은 일이 흔히 일어나고 있다. 나는 이와 같은 어거지가 우리 사회의 발전을 정체시키고 망치는 병인이라고 생각한다.
민주화도 좋고 개인의 자유도 좋지만 어거지가 통하는 사회가 되어서는 안 된다. 법치의 원칙이 없는 민주주의란 있을 수 없다. 그런데 법을 무시하거나 어거지를 부려 가면서 자유와 권리만을 주장한다면 그것은 민주주의가 아닐 것이다. 불만이나 갈등이 있을 때에라도 법은 지켜야 하는 것이 사회의 룰이 되어야 한다. 소크라테스가 말했듯이 악법도 법이기 때문이다. 형평성이니 생계니 하며 권리를 주장하는 것도 법과 질서를 지킨 이후의 문제일 것이고 악법이라도 고치기 전까지는 지켜야 할 것이다.
법과 함께 또 우리가 지켜야 할 룰로서 도덕적 윤리적 가치 기준이 있을 것이다. 법이란 세상의 문제를 풀어나가기에는 너무 좁은 틀이다. 사회에는 법뿐만 아니라 도덕과 윤리도 필요한 것이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서는 이와 같은 도덕과 윤리가 무너지고 말았다. 어쩌면 이에는 시류에 영합해 온 언론과 방송의 책임도 클 것이다. 도덕을 세우기보다는 무너뜨리는 프로그램을 무책임하게 방송하고 어른들은 몰라요 어쩌구 하며 청소년들의 정서와 기호에만 영합하여 사회적 권위를 무너뜨린 책임이 언론에 어찌 없다 할 것인가? 세계적으로 개인의 다양성이 최대한 존중되고 자유 민주 국가의 전범이라 할 수 있는 미국에서 대통령이 성서에 손을 얹고 취임 선서를 하는 것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할 것이다. 방송뿐 아니라 학계, 교육계 등 사회 모든 부분에서 무너진 도덕 윤리를 바로 세우는 데 가장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적어도 법과 도덕이 우리 사회의 최소한의 공통 기준으로 살아 있을 때 상식이라는 말이 가능한 것 아니겠는가? 나는 이것이 사회의 기본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오늘날 사회는 법과 도덕이 가장 뒷전인 사회가 되어 버리고 말았다. 먹고 사는 일이 급할 뿐, 법은 걸리지 않는 한에서 이용하면 된다는 생각, 도덕이라는 것은 구시대적인 낡은 것이라는 생각이 결과적으로 먹고 사는 일까지 어렵게 만들고 있다. 법과 도덕이 가장 뒷전이기는 학교도 마찬가지다. 공부만 잘하면 되고 교칙이나 예절은 그리 중요시되지 않는 교육, 교육 과정 자체가 입시 과목 위주로 편성되어 인성 교육이나 준법 교육 같은 건 조회 시간이나 종례 시간에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현실, 그래서 법과 도덕을 가장 뒷전으로 생각하는 잘못된 태도는 바로 학교에서 '길러지는' 것이다.
나는 학교에서 인성 교육과 준법 교육, 생활 교육 등을 잠재적 교육 과정이 아닌, 명시적 교육 과정으로 편성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교육의 내용을 국가가 일방적으로 편성하고 통제해서 전체주의의 함정에 빠진다면 안 되겠지만, 그렇지 않은 범위 내에서 수업 시간 중에 '룰'을 가르칠 수 있도록 인성 교육을 교육 과정화하여야 한다. 그리하여 우리 아이들을 법과 도덕을 중히 여기고, 공동체의 생활 질서를 지키며, 합리적으로 주장하되 승복할 줄도 아는 시민으로 길러야 할 것이다. 목소리만 크면 이기는 천민 자본주의, 천민 민주주의가 아니라 진정한 민주 시민으로서 우리 아이들을 길러야 할 것이다. '룰'을 지킬 줄 아는 시민 계급이 없다면 민주주의도, 상식이 통하는 사회도 없는 것이다. 이런 면에서 얼마 전 서울대 김성곤 교수가 초등학교 1학년 1년만이라도 교과 교육을 하지 말고 인성 교육만을 하자고 한 주장에 나는 적극 찬성한다.
상식적인 생각만이 옳은 것은 아닐 것이다. 때로 사회에는 상식을 뛰어넘는 창의적인 생각을 해 내는 사람도 있어야 할 것이다. 상식이 사회를 유지하는 것이라면, 상식을 뛰어넘는 생각은 사회를 발전시키는 데 없어서는 안 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조선 시대의 실학자들의 생각이나 라이트 형제가 하늘을 날았던 일들이 어찌 당시로서 상식적이었다 할 수 있었겠는가? 그러나 역사의 진보는 상식이 건재하는 사회에서 가능한 것이다. 상식이 무너지고 사회가 혼란한 다음에야 진보 또한 어찌 힘을 얻겠는가?
지금 우리 사회에서 가장 시급한 일은 사회적 룰을 만드는 일이다. 자기 주장만을 상식이라고 주장할 것이 아니라 누구나 따를 수 있는 룰을 기초로 상식을 세워야 할 때다. 룰을 지키는 것이 상식이 되는 가장 상식적인 사회를 만들기 위해 학계와 교육계, 정치계 등 사회 전체가 함께 노력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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