섀도복싱 / 신해욱 거기 있다는 걸 안다. 빈틈을 노려 내가 커다란 레프트 훅을 날릴 때조차 당신 은 유유히 들리지 않는 휘파람을 불며 나의 옆구리를 치 고 빠진다. 크게 한 번 나는 휘청이고 저 헬멧의 틈으로 보이는 깊고 어두운 세계와 우우우, 울리는 낮게 매복한 소리. 바닥으로 끌어내리는 완악한 힘에 맞서 당신을 안아버 리는 이 짧고 눈부신 한낮. 부러진 내 갈비뼈 사이의 텅 빈 간격으로 잠입하는 당신 에 대해 당신의 그 느린 일렁임에 대해 나는 단지 말하지 않을 뿐이다. 천천히 저녁이 열리면 이 헐거움을 놓치지 않으며 길고 가늘게 드러나는 당신. 빈틈을 노려 내가 복부를 공격할 때조차 당신은 정확히 내 팔 길이만큼만 물러서며 나를 조롱한다. 당신이 거기 없다는걸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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