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하늘 시편지

[이상국] 무밭에서

行雲300 2006. 9. 28. 17:08
    무밭에서 / 이상국 무는 제 몸이 집이다 안방이고 변소다 저들이 울타리나 문패도 없이 흙 속에 실오라기 같은 뿌리를 내리고 조금씩조금씩 생을 늘리는 동안 그래도 뭔가는 믿는 데가 있었을 것이다 그렇게 자신을 완성해 가다가 어느날 농부의 손에 뽑혀 나갈 때 저 들은 순순히 따라 나갔을까, 아니면 흙을 붙잡고 안간힘을 썼을까 무밭을 지나다가 군데군데 솎여 나간 자리를 보면 아직 그들의 체온이 남아있는 것 같아 손을 넣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