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하늘 시편지

[강만] 눈 숲

行雲300 2006. 2. 26. 23:49
    눈 숲 / 강 만 나지막한 숲에 눈이 내리고 있었습니다. 눈은 내려와 숲 속 의 것들을 하나씩 지워내기 시작했습니다. 지상의 빛깔들을 모두 지워낸 후에야 눈은 그치고 낮은 소리로 흐르던 물도 멈추었습니다. 마지막 남아 있던 새 몇 마리 날아가버리자 숲은 텅 비었습니다. 어떤 분의 옷깃으로 쓸어낸, 빛깔도 소 리도 없는 성지였습니다. 그제야 하늘에서 영롱한 말씀들이 창세기의 언어로 숲 속에 쏟아져 내렸습니다. 숲이 눈부셨습 니다. 현란한 욕망의 색채들을 지워버리면 우리도 저렇게 아 름다울 수 있을까. 나는 벌판을 가로질러 신비한 말씀들을 듣기 위해 육신을 벗어버리고 숲으로 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