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지혜

에리히 프롬의 '사랑의 기술'에서

行雲300 2006. 2. 26. 00:30
*아무것도 모르는 자는 아무것도 사랑하지 못한다. ....그러나 이해하는 자는 또한 사랑하고 주목하고 파악한다. (파라켈수스)

*인간-모든 시대, 모든 문화의-은 동일한 문제, 곧 어떻게 분리 상태를 극복하는가, 어떻게 결합하는가, 어떻게 자신의 개체적 생명을 초월해서 합일을 찾아내는가 하는 문제에 직면하고 있다. ....(중략)많은 대답- 이 대답의 기록이 인간의 역사이다. (26쪽)
- 이하 페이지 표시는 황문수 옮긴 문예출판사 본의 페이지임.

*<현대의 상황> 현대 자본주의의 평등은 일체성보다는 동일성,.... 비개성화된 평등....표준화....평균화, 소외 .....(32-33쪽)

*공서적 합일과는 대조적으로 성숙한 "사랑"은 "자신의 통합성" 곧 개성을 "유지하는 상태에 있어서의 합일"이다. (38쪽)

*자기 자신을 줄 수 있는 사람은 누구든지 부자이다. (중략) 준다는 것은 다른 사람을 주는 자로 만들고 두 사람 다 생명을 탄생시키는 기쁨에 참여하는 것을 의미한다. (42-43쪽)

*사랑은 사랑하고 있는 자의 생명과 성장에 대한 우리들의 적극적 관심인 것이다.(45쪽)

* 어린애의 사랑은 "나는 사랑받기 때문에 사랑한다"는 원칙에 따르고 있고 성숙한 사랑은 "나는 사랑하기 때문에 사랑받는다"는 원칙에 따르고 있다. (62쪽)

*아버지의 사랑은 원칙과 기대에 의해 인도되어야 한다. 아버지의 사랑은 위협적이고 권위적이기보다는 오히려 참을성 있고 관대해야 한다. 아버지의 사랑은 성장하는 어린애에게 능력감을 증대시켜야 하고 마침내 어린애에게 자기 자신을 지배하는 권위를 갖고 아버지의 권위로부터 떨어져나가는 것을 허용해야 한다. (66쪽)

*사랑은 본질적으로 의지의 행위, 곧 나의 생명을 다른 한 사람의 생명에 완전히 위임하는 결단의 행위여야 한다. (81쪽)

*순수한 사랑은 생산성의 표현이고 보호, 존경, 책임, 지식을 의미한다. 순수한 사랑은 누군가에 의해 야기된다는 의미에서의 "감정"이 아니라 사랑받는 자의 성장과 행복에 대한 능동적 갈망이며, 이 갈망은 자신의 사랑의 능력에 근원이 있다. (85쪽)

*신은 현상의 배후에 있는 통일 원리의 상징이고 인간의 내면에 있는 정신적 종자로부터 피어날 꽃의 상징이다. 신은 이름을 가질 수 없다. (96쪽)

*궁극적 실재, 궁극적 일자는 언어나 사고로 파악할 수 없다. (103쪽)

*지각하는 사고는, 참된 실재에 도달하려면, 그 자체를 초월하지 않으면 안 된다. 대립은 인간의 정신의 범주이고 그 자체로서 실재의 요소는 아니다. (104쪽)

*두 사람이 서로 그들의 실존의 핵심으로부터 사귈 때, 그러므로 그들이 각기 자신의 실존의 핵심으로부터 자기 자신을 경험할 때 비로소 사랑은 가능하다. 오직 이러한 "핵심적 경험"에만 인간의 현실이 있고 오직 여기에만 사랑의 기반이 있다. 사랑은 이와 같이 경험될 때에만 끊임없는 도전이다. 사랑은 휴식처가 아니라 함께 움직이고 성장하고 일하는 것이다. (137쪽)

*합리적 사고는 대다수 사람의 의견에도 "불구하고" 자기 자신의 생산적 관찰과 사고에 기초를 둔 독립된 확신에 뿌리박고 있다. (161쪽)

*<교육과 조작> 교육은 아동이 자신의 가능성을 실현하는 것을 도와 준다. 교육과 반대되는 것이 조작이며, 조작은 이러한 가능성의 성장에 대한 믿음의 결여, 그리고 어른이 어린애에게 바람직하지 못한 것을 억압할 때 비로소 어린애는 올바르게 되리라는 확신에 바탕을 두고 있다. (163쪽)

*권력에는 합리적 신앙이 없다. 권력에 대한 굴복, 또는 권력을 갖고 있는 자의 입장에서는 권력을 유지하려는 소망이 있을 뿐이다. (164쪽)

*곤란과 좌절과 슬픔을 "우리들"에게 일어나서는 안 될 부당한 처벌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우리를 강하게 만들기 위해 극복해야 할 도전으로서 받아들이려면 신앙과 용기가 필요하다. (166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