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기행문, 기타
만우절 생각
行雲300
2006. 2. 25. 23:47
만우절 생각
십여 년 전 여중에 근무할 때였습니다. 3학년 한문 시간이었는데 한창 수업하다보니 뭔가 이상했습니다. 가만히 보니 1학년 녀석들이 교실을 바꾸어서 앉아 있는 게 아닙니까? 생각해 보니 그날이 만우절이었던 것입니다. 황당하기도 했지만 나도 장난기가 동했습니다. 그래서 시침을 뚝 떼고 "지난 시간에 예고한 대로 쪽지 시험을 치겠다. 하나 틀릴 때마다 한 대씩이다." 하고 시험을 쳤습니다.
그쯤 하면 이실직고하고 물러갈 줄 알았는데 녀석들은 알지도 못하는 3학년 문제를 끙끙거리며 푸는 게 아닙니까? 나도 끝까지 모른 척하고 문제를 걷어 채점하고 틀린 문제 하나 당 한 대씩 손바닥을 때려줍니다.
그 때 1학년 교실에서 들켜서 올라온 3학년 녀석들이 복도 창문에 매달려 "선생님, 저희가 잘못했어요." 하고 비는 것입니다. 나도 끝까지 시침을 떼고 "어, 그러면 너희들은 뭐야. 3학년 아니었어? 미안하다, 안 아팠니?" 그러자 이 녀석들은 "괜찮아요. 별로 안 아팠어요." 그러면서 자기네들이 끝내 나를 속인 것이 재미있어 죽겠다는 듯 깔깔거리며 1학년 교실로 돌아가는 것이었습니다.
오늘은 만우절입니다. 지금 근무하는 곳이 남고라서 그런 것도 있지만 요즘은 만우절 거짓말도 사라진 것 같습니다. 교무실도 교실도 심심합니다. 옛날 여중에 근무할 때 만우절이면 안 속으려고 긴장하다가도 끝내 속기도 하던 그런 때가 차라리 그리워집니다.
물론 만우절이라고 해서 거짓 화재 신고처럼 심한 거짓말이나 남에게 피해를 주는 거짓말은 없어져야겠지만 그래도 어딘지 한 구석으로 허전합니다. 세상이 삭막해진 것 같기도 합니다.
만우절 같지 않은 만우절 날, 나는 이런 엉뚱한 생각을 해 봅니다. 세상을 아름답게 하는 것은 '사실'이 아니라 '거짓말'이 아닐까? 기분 좋고 아름다운 거짓말……. 그래서 나는 아내에게 이렇게 말해 봅니다.
"여보, 당신 오늘 정말 이쁜데, 거짓말 아니라니까."
2003. 4. 1 行雲
십여 년 전 여중에 근무할 때였습니다. 3학년 한문 시간이었는데 한창 수업하다보니 뭔가 이상했습니다. 가만히 보니 1학년 녀석들이 교실을 바꾸어서 앉아 있는 게 아닙니까? 생각해 보니 그날이 만우절이었던 것입니다. 황당하기도 했지만 나도 장난기가 동했습니다. 그래서 시침을 뚝 떼고 "지난 시간에 예고한 대로 쪽지 시험을 치겠다. 하나 틀릴 때마다 한 대씩이다." 하고 시험을 쳤습니다.
그쯤 하면 이실직고하고 물러갈 줄 알았는데 녀석들은 알지도 못하는 3학년 문제를 끙끙거리며 푸는 게 아닙니까? 나도 끝까지 모른 척하고 문제를 걷어 채점하고 틀린 문제 하나 당 한 대씩 손바닥을 때려줍니다.
그 때 1학년 교실에서 들켜서 올라온 3학년 녀석들이 복도 창문에 매달려 "선생님, 저희가 잘못했어요." 하고 비는 것입니다. 나도 끝까지 시침을 떼고 "어, 그러면 너희들은 뭐야. 3학년 아니었어? 미안하다, 안 아팠니?" 그러자 이 녀석들은 "괜찮아요. 별로 안 아팠어요." 그러면서 자기네들이 끝내 나를 속인 것이 재미있어 죽겠다는 듯 깔깔거리며 1학년 교실로 돌아가는 것이었습니다.
오늘은 만우절입니다. 지금 근무하는 곳이 남고라서 그런 것도 있지만 요즘은 만우절 거짓말도 사라진 것 같습니다. 교무실도 교실도 심심합니다. 옛날 여중에 근무할 때 만우절이면 안 속으려고 긴장하다가도 끝내 속기도 하던 그런 때가 차라리 그리워집니다.
물론 만우절이라고 해서 거짓 화재 신고처럼 심한 거짓말이나 남에게 피해를 주는 거짓말은 없어져야겠지만 그래도 어딘지 한 구석으로 허전합니다. 세상이 삭막해진 것 같기도 합니다.
만우절 같지 않은 만우절 날, 나는 이런 엉뚱한 생각을 해 봅니다. 세상을 아름답게 하는 것은 '사실'이 아니라 '거짓말'이 아닐까? 기분 좋고 아름다운 거짓말……. 그래서 나는 아내에게 이렇게 말해 봅니다.
"여보, 당신 오늘 정말 이쁜데, 거짓말 아니라니까."
2003. 4. 1 行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