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는 집을 짓지 않는다

공무도하가(公無渡河歌)

行雲300 2006. 2. 25. 23:05
공무도하가(公無渡河歌)


그날 저녁 임진강은
정지 신호처럼 붉게 물들었지요
다리는 건널 수 없도록 끊겨 있었고
강물만 하염없이 바라보다 돌아서려는데
머리 허옇게 센 할아버지 한 분
술에 잔뜩 취해
오마니, 오마니……
피맺힌 목소리로 울부짖으며
미친 듯이 강물로 뛰어들더군요
멀리서 부인인 듯한 할머니가
할아버지를 부르며 달려왔지만
할아버지는 어느새 강물에 휩쓸려 보이지 않았어요
할머니는 강물에 반쯤 몸이 잠긴 채로 넋이 나가
건너지 말라캤는데
건너지 말라캤는데
기어이 건너가다 죽어버리면
내는 혼자서 어이 살라꼬
노을도 피눈물로 번지는 것 같았지요
잠시 후에 사람들이 몰려와서
할머니를 끌어내고 강을 수색했지만
할아버지는 찾지 못했다나 봐요
수십 년 건널 수 없었던 세월
할아버지는 그날 강물이 되어 건너간 게지요

돌아오는 길
그날따라 자유로는 많이도 막혔고
차안에서 듣는 뉴스는
목숨을 건 탈북자들의 소식을 전하고 있었지요


2002.7.25 行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