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는 집을 짓지 않는다

감자를 구우며

行雲300 2006. 2. 25. 23:01
감자를 구우며


기세 좋게 타오르던 불꽃도
어느덧 사위어들고
선득선득 어두워가는 가을밤
남은 잿불 속을 뒤져
묻어두었던 감자를 꺼낸다
재 속에서 꺼낸 감자가
모닥불보다도 더 뜨거워서
호호 불며 껍질을 벗긴다
모락모락 김이 나는 감자 한 알
가을밤이 다시 따끈해진다
생각해 보면 젊은 날이란
언젠가는 꺼져버릴 모닥불 같아서
젊음의 불꽃 꺼진 자리에
재 같은 밤은 쓸쓸히 찾아오리니
우리들 가슴 아직은 뜨거울 때
잘 여문 사랑 한 알 묻어 둘 일이다
젊음의 장작더미 아낌없이 불태워서
따끈한 추억 한 알 구워 둘 일이다
그리운 날들은 불꽃처럼 지나가는 것
뜨겁던 젊음도 잿불처럼 식어지면
구운 감자 한 알의 온기로 견디어야 할
춥고 긴 밤이 우리 앞에 찾아오리니


2003. 10. 24 行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