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문 취소 비판이 금도를 넘었다고?
조문 취소 비판이 금도를 넘었다고?
윤석열의 영국 여왕 조문 취소에 대한 야당과 국민의 비판에 대해 “민주당이 더구나 장례식, 조문하기 위해서 가 계신 대통령에 대해서 이런저런 금도 넘는 근거 없는 비판을 해서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주호영뿐 아니라 정치권이나 언론에서는 툭 하면 금도를 넘었다는 표현을 잘 쓰는데, 결론부터 말하면 이 말은 잘못된 표현이다.
문맥으로 보아 이들은 '금도'라는 단어를 '넘어서는 안 될 선', '지켜야 할 예의나 도리' 정도의 뜻으로 생각하고 쓴 것 같다. 아마 '금도'의 '금'을 '금할 금(禁)'으로 생각하고 대충 '금기' 비슷한 뜻으로 쓰고 있는 것 같은데, 그런 뜻의 '금도'라는 단어는 우리말에 있지도 않으며, 어떤 사전이나 법전에도 나오지 않는 말이다.
본래 '금도'라는 말은 '금도'를 가져야 한다', '금도가 있다', '금도가 부족하다'와 같이 쓸 수 있는 말로, 그 뜻은 '다른 사람을 포용할 만한 도량(度量)'이라는 뜻이며 '옷깃 금(襟)'자를 써서 '襟度' 라고 쓴다. 그러니까 말 그대로 '마음 옷깃의 넓이'가 '금도'다. '옷깃 금'을 쓰는 단어로는 '금도' 말고 '흉금(胸襟)을 터놓다'는 말의 '금'도 '옷깃 금'이다.
이처럼 '금도'는 '도량'의 뜻으로 쓰이던 단어였는데, 일부 정치인이나 기자들이 그 뜻을 '지켜야 할 어떤 도리나 예의'의 뜻일 것으로 오해한 데서 문제가 생긴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언제부턴가 신문 기사나 정당의 성명에서 '금도를 넘었다'느니 '금도를 지켜라'느니 하는 국적 불명, 어원 불상의 희한한 표현이 난무하게 된 것 같다.
이런 일은 비유하자면 트랙 경기도 아닌 마라톤 경기에서 상대 선수가 주로를 넘어섰다고 비판하는 것처럼 어처구니없는 말이다. 도대체 자기들 마음에 들지 않으면 있지도 않는 금도를 넘었다고 하니 이같은 억지가 어디 있는가? 언어를 이렇게 자의적으로 왜곡하여 쓰는데 무슨 논리적 대화나 토의, 타협이 있을 수 있겠는가? 금도라는 이 엉터리 단어 하나에 우리 정치의 수준과 실상이 그대로 드러난다.
굳이 상대방이 선을 넘는 것 같을 때는 무슨 큰 금기나 범한 것처럼 금도를 넘었다 같은 있지도 않는 표현을 쓸 것이 아니라, 도를 넘었다, 상도를 벗어났다 정도로 표현하는 것이 옳다.
금도가 무슨 뜻인지도 모르면서 조문 취소에 대해 비판하는 야당을 향해 금도를 넘었다는 주호영 씨는 우리말 공부부터 제대로 하고, 부디 여당으로서의 금도(襟度)부터 가져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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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금도'는 중국어나 일본어에서도 사용되는 단어다. 네이버 사전에서 용례를 가져와 소개한다.
<일본어>
丈夫じょうふの襟度きんどを示しめす. → 금도
장부의 금도를 보이다
大国たいこくとしての襟度きんどを示しめす
대국으로서의 도량을 보이다
<중국어>
襟度豁如. (도량이 넓다.)
新的政治要承认对方并展现包容的襟度,还要从发挥节制和忍耐心上出发。(새 정치는 상대를 인정하고 포용하는 금도를 보이고, 절제와 인내심을 발휘하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