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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와 메세지의 괴리 혹은 허수아비 논증
行雲300
2020. 12. 16. 17:10
미디어와 메세지의 괴리 혹은 허수아비 논증/ 강승남
ㅡ'시무 7조'론
1. 새 술은 새 부대에
'내용만 좋으면 되지 형식이 뭐가 중요해.' 라고 당당히 주장하는 말을 가끔 듣는다. 언뜻 그럴싸하지만 이 말에는 문제가 있다.
내용과 형식은 실제로는 불가분의 것이다. 이것은 글이나 예술뿐 아니라 삶의 모든 분야에 공히 해당되는 말일 것이다. 그런데도 이 둘을 제멋대로 나누거나 어느 한쪽만을 중시한다는 것은 성실하지도 성숙되지도 못한 태도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하는 법이다.
2. 형식은 약속이다
최근 청와대 국민 청원에 '시무 7조'라는 글이 올라와 세간에 화제가 되고 있다.
이 글은 '폐하'에게 올리는 상소문의 형식으로 쓰여졌다. 지금이 봉건 왕조 시대도 아닌데, 더군다나 청와대 청원이라는 공식적인 자리에서, 대통령의 답변을 요구하는 글을 올리며 상소문의 형식을 빌려 쓰는 건 대단히 적절치 못하다. 글의 내용을 떠나서 글쓰기의 기본 형식을 갖추지 못한 글이라 생각된다.
글쓰기에서 형식이란 일종의 약속이라 할 수 있다. 청원이나 진정, 각종 법률 문서 등 공식적, 사무적인 글뿐 아니라 개인적 편지나 사적인 글에서도 지켜야 할 기본 형식과 어법이 있다. 청와대 청원은 국정 현안에 관한 국민의 의견 전달과 그에 대한 정부, 청와대 책임자의 답변이 이루어지는 직접적인 소통의 장이다. 따라서 청와대 청원은 사실에 바탕을 둔 정확한 내용 전달과 책임 있는 답변이 이루어져야 할 공적인 소통의 장이며, 봉건 시대의 전제 군주에게 올리는 상소의 형식을 취해서는 안 된다.
3.상소문 형식의 허구성
그러한 청원의 장에서 봉건 시대의 상소라는 형식을 쓴다는 것은 기본적으로는 청원인 자신을 포함해서 청원의 내용과 상황을 허구화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상소의 내용도 그에 따라 허구화되고 왜곡될 수밖에 없다. 청원인 자신뿐 아니라 대상 인물들도 허구화, 익명화되고, 상소의 상황이나 사건들도 초점이 흐려진 영상처럼 현실성을 잃게 되며, 진지하고 사실적이어야 할 청원이 감정에 치우치거나 과장되고 희화화되기 쉽다.
국민들의 민주적 선거에 의해 뽑힌 5년 임기의 대통령은 왕조 시대의 전제 군주로 둔갑되고, 정부의 장관들은 양반 관료가 되어 평등사회인 대한민국이 부지불식간에 신분 사회인 조선 시대로 되돌아간다. 당당한 민주적 권리와 주체성을 가진 민주 시민들이 느닷없이 아무 힘도 없이 억압당하기만 하는 수동적, 봉건적 백성으로 추락하고, 민주적 법적 절차에 따라 행사되어야 할 행정 행위나 조치 사항들이 '폐하'의 '성은'이니 '탐관오리'의 '파직'이니 하는 봉건적, 시혜적 통치 행위로 슬쩍 왜곡되고 만다.
4. 허수아비 논증의 오류
청원인이 그러한 의도를 가지고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가 차용한 상소문 형식은 현재의 대한민국을 전제 군주가 통치하는 신분사회인 것처럼 설정하여, 은연 중에 정부와 국민의 관계를 선악의 대결 관계로 과장되게 왜곡시키고 있다. 뿐만 아니라 보수층을 대변하는 것으로 생각되는 청원인 자신의 비판을 마치 모든 백성의 생각인 것처럼 과장하고 있다. 이는 엄밀히 따지면 논리학에서 말하는 허수아비 논증의 오류에 해당한다. 허수아비 논증이란 상대방의 입장이나 주장을 공격하면서, 상대방을 좀더 공격하기 쉬운 대상으로 제멋대로 바꾸어놓고 공격하는 논법으로, 이는 논리적으로는 명백한 오류다.
청원인은 청원이라는 명목으로 정부 시책을 비판하고 자신의 정치적 주장을 내세우면서 엉뚱하게 상소문 형식을 차용하는데, 그 순간 대통령과 정부 각료들은 봉건 왕조 시대의 전제 군주와 양반 관료로 허수아비화된다. 민주적 선거에 의해 선출된 정부가 법적 절차와 다수 국민의 뜻에 따라 추진하고 있는 시책들이 졸지에 전제 군주와 양반 관료들이 독단적, 일방적으로 전횡한 것처럼 둔갑된다. 물론 정부가 추진하는 정책들에 잘못도 있을 수 있고, 이에 대한 야당이나 보수쪽 시민 단체들의 반대와 저항도 충분히 이해가 된다. 그러나 그러한 정부와 야당, 보수층의 대립이 전제 군주와 봉건 백성의 대립은 아닌 것이다. 그런데도 청원인은, 본인의 의도였는지는 모르겠으나, 상소라는 형식을 통해 정부와 대통령을 왕조 시대의 전제 군주인 것처럼 허수아비로 만들어 비판하고 공격하기 쉽게 일종의 조작을 가한 것이다.
게다가 정확한 근거 자료 제시나 사실적 분석에 따라 청원의 내용을 분명하게 제시하지 않고 애매한 비유적, 추상적, 감정적 수사로 일관한 나머지 현재 우리의 정부가 일본의 아베나 중국 시진핑, 러시아의 푸틴, 심지어 '북국의 돈왕'만 못하다고 비난한 구절에 이르러서는 현실의 왜곡과 근거없는 비하가 도를 넘어도 한참 넘었다는 생각마저 들게 한다. 이러한 지나친 왜곡이나 감정적 비하는 허수아비 논증의 대표적인 맹점이다.
5. 청원의 모호성
이쯤 되면 청와대로서도 답변하기가 무척 곤혹스러워질 수밖에 없다. 허구화된 익명의 청원인이 제멋대로 정해놓은 상소문 형식에 맞추어 청와대도 '과인은....하교하노라'라고 봉건 군주의 목소리로 답변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내용 면에서도 그렇다. 청원인이 봉건 신분사회의 용어와 어법으로 청원한 내용에 대해 청와대도 같은 어법으로 답변해야 하는 건지, 아니면 청원인 자신은 그런 허구적, 추상적 표현을 썼어도 청와대가 잘 알아서 지금 상황에 맞게 바꿔서 답하라는 것인지 황당해지게 된다.
본인이 익명이나 혹은 '돼지'와 같은 우화적 비유, '13명의 대신' 같은 숫자 등 모호한 표현으로 '탐관오리'들을 고발해 놓고서 정부한테는 어떤 실제적 조치와 구체적 답변을 내놓으라는 건지, 그리고 무엇보다도 청원인의 실명이나 실제 나이, 하는 일 등 기본 신상도 모르는데 누군지도 모르는 가면의 인물에게 어떻게 답을 하라는 건지, 이쯤되면 답변을 하려고 해도 제대로 할 수도 없는 상황이 되고 만다. 구청이나 동사무소에 누군지도 모르는 민원인이 '소인은 청학 동자이온데.....'하고 상소문 형식으로 내용도 모호하게 민원 서신을 보냈다면 담당 공무원이 무슨 말로 어떻게 회신해야 하겠는가?
그래서인지 나는 상소문 형식의 '시무 7조'를 읽었을 때 무슨 무협지나 사극을 보는 것 같은 허황된 느낌이 들게 되었던 것 같다. 나는 청원인에게 이렇게 물어보고 싶다. 본인은 과연 대통령이나 청와대 관계자로부터 어떤 답변을 기대했는지? 과연 청원인은 자신의 상소에 맞추어 문재인 대통령이 '과인은 너의 상소를 읽고 하교하노라.'라며 답변해 주기를 바라는 건지, 아니면 자신은 봉건 사회적 설정과 허구적이고 우화적인 표현들을 사용했어도 청와대가 현재 상황에 맞게 잘 알아들어서 현실적 표현으로 바꾸고, 익명이나 숫자로 고발한 '대신'들과 사건에 대해서도 청와대가 수수께끼 풀듯 밝혀내어서 한번 '책임있게' 답변해 보라는 말인지 청원인의 생각이 정말 궁금하다.
6. 미디어는 메세지다
세간에 크게 화제가 되고 있는 '시무 7조', 그 내용에는 공감이 가는 면도 많다. 그러나 갓을 쓰고 도포를 입은 채로 애매한 말로 '통촉하여 주소서'는 정말 아니라고 본다. 마샬 맥루한은 그의 명저 '미디어의 이해'에서 '미디어는 메세지'라고 설파하였다. 현대 정치에 관련된 청원의 메세지를 봉건 시대의 상소문이라는 시대 착오적 미디어에 담을 수는 없는 일이다. '시무 7조'의 청원인이 제대로 된 형식과 요건, 현실에 맞는 분명한 표현과 객관적 논리를 갖추고 수준 있는 청원이나 정치 논평을 써주기를 바란다.
상소문 '시무 7조'는 아무래도 좀 생뚱맞다.
ㅡ'시무 7조'론
1. 새 술은 새 부대에
'내용만 좋으면 되지 형식이 뭐가 중요해.' 라고 당당히 주장하는 말을 가끔 듣는다. 언뜻 그럴싸하지만 이 말에는 문제가 있다.
내용과 형식은 실제로는 불가분의 것이다. 이것은 글이나 예술뿐 아니라 삶의 모든 분야에 공히 해당되는 말일 것이다. 그런데도 이 둘을 제멋대로 나누거나 어느 한쪽만을 중시한다는 것은 성실하지도 성숙되지도 못한 태도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하는 법이다.
2. 형식은 약속이다
최근 청와대 국민 청원에 '시무 7조'라는 글이 올라와 세간에 화제가 되고 있다.
이 글은 '폐하'에게 올리는 상소문의 형식으로 쓰여졌다. 지금이 봉건 왕조 시대도 아닌데, 더군다나 청와대 청원이라는 공식적인 자리에서, 대통령의 답변을 요구하는 글을 올리며 상소문의 형식을 빌려 쓰는 건 대단히 적절치 못하다. 글의 내용을 떠나서 글쓰기의 기본 형식을 갖추지 못한 글이라 생각된다.
글쓰기에서 형식이란 일종의 약속이라 할 수 있다. 청원이나 진정, 각종 법률 문서 등 공식적, 사무적인 글뿐 아니라 개인적 편지나 사적인 글에서도 지켜야 할 기본 형식과 어법이 있다. 청와대 청원은 국정 현안에 관한 국민의 의견 전달과 그에 대한 정부, 청와대 책임자의 답변이 이루어지는 직접적인 소통의 장이다. 따라서 청와대 청원은 사실에 바탕을 둔 정확한 내용 전달과 책임 있는 답변이 이루어져야 할 공적인 소통의 장이며, 봉건 시대의 전제 군주에게 올리는 상소의 형식을 취해서는 안 된다.
3.상소문 형식의 허구성
그러한 청원의 장에서 봉건 시대의 상소라는 형식을 쓴다는 것은 기본적으로는 청원인 자신을 포함해서 청원의 내용과 상황을 허구화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상소의 내용도 그에 따라 허구화되고 왜곡될 수밖에 없다. 청원인 자신뿐 아니라 대상 인물들도 허구화, 익명화되고, 상소의 상황이나 사건들도 초점이 흐려진 영상처럼 현실성을 잃게 되며, 진지하고 사실적이어야 할 청원이 감정에 치우치거나 과장되고 희화화되기 쉽다.
국민들의 민주적 선거에 의해 뽑힌 5년 임기의 대통령은 왕조 시대의 전제 군주로 둔갑되고, 정부의 장관들은 양반 관료가 되어 평등사회인 대한민국이 부지불식간에 신분 사회인 조선 시대로 되돌아간다. 당당한 민주적 권리와 주체성을 가진 민주 시민들이 느닷없이 아무 힘도 없이 억압당하기만 하는 수동적, 봉건적 백성으로 추락하고, 민주적 법적 절차에 따라 행사되어야 할 행정 행위나 조치 사항들이 '폐하'의 '성은'이니 '탐관오리'의 '파직'이니 하는 봉건적, 시혜적 통치 행위로 슬쩍 왜곡되고 만다.
4. 허수아비 논증의 오류
청원인이 그러한 의도를 가지고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가 차용한 상소문 형식은 현재의 대한민국을 전제 군주가 통치하는 신분사회인 것처럼 설정하여, 은연 중에 정부와 국민의 관계를 선악의 대결 관계로 과장되게 왜곡시키고 있다. 뿐만 아니라 보수층을 대변하는 것으로 생각되는 청원인 자신의 비판을 마치 모든 백성의 생각인 것처럼 과장하고 있다. 이는 엄밀히 따지면 논리학에서 말하는 허수아비 논증의 오류에 해당한다. 허수아비 논증이란 상대방의 입장이나 주장을 공격하면서, 상대방을 좀더 공격하기 쉬운 대상으로 제멋대로 바꾸어놓고 공격하는 논법으로, 이는 논리적으로는 명백한 오류다.
청원인은 청원이라는 명목으로 정부 시책을 비판하고 자신의 정치적 주장을 내세우면서 엉뚱하게 상소문 형식을 차용하는데, 그 순간 대통령과 정부 각료들은 봉건 왕조 시대의 전제 군주와 양반 관료로 허수아비화된다. 민주적 선거에 의해 선출된 정부가 법적 절차와 다수 국민의 뜻에 따라 추진하고 있는 시책들이 졸지에 전제 군주와 양반 관료들이 독단적, 일방적으로 전횡한 것처럼 둔갑된다. 물론 정부가 추진하는 정책들에 잘못도 있을 수 있고, 이에 대한 야당이나 보수쪽 시민 단체들의 반대와 저항도 충분히 이해가 된다. 그러나 그러한 정부와 야당, 보수층의 대립이 전제 군주와 봉건 백성의 대립은 아닌 것이다. 그런데도 청원인은, 본인의 의도였는지는 모르겠으나, 상소라는 형식을 통해 정부와 대통령을 왕조 시대의 전제 군주인 것처럼 허수아비로 만들어 비판하고 공격하기 쉽게 일종의 조작을 가한 것이다.
게다가 정확한 근거 자료 제시나 사실적 분석에 따라 청원의 내용을 분명하게 제시하지 않고 애매한 비유적, 추상적, 감정적 수사로 일관한 나머지 현재 우리의 정부가 일본의 아베나 중국 시진핑, 러시아의 푸틴, 심지어 '북국의 돈왕'만 못하다고 비난한 구절에 이르러서는 현실의 왜곡과 근거없는 비하가 도를 넘어도 한참 넘었다는 생각마저 들게 한다. 이러한 지나친 왜곡이나 감정적 비하는 허수아비 논증의 대표적인 맹점이다.
5. 청원의 모호성
이쯤 되면 청와대로서도 답변하기가 무척 곤혹스러워질 수밖에 없다. 허구화된 익명의 청원인이 제멋대로 정해놓은 상소문 형식에 맞추어 청와대도 '과인은....하교하노라'라고 봉건 군주의 목소리로 답변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내용 면에서도 그렇다. 청원인이 봉건 신분사회의 용어와 어법으로 청원한 내용에 대해 청와대도 같은 어법으로 답변해야 하는 건지, 아니면 청원인 자신은 그런 허구적, 추상적 표현을 썼어도 청와대가 잘 알아서 지금 상황에 맞게 바꿔서 답하라는 것인지 황당해지게 된다.
본인이 익명이나 혹은 '돼지'와 같은 우화적 비유, '13명의 대신' 같은 숫자 등 모호한 표현으로 '탐관오리'들을 고발해 놓고서 정부한테는 어떤 실제적 조치와 구체적 답변을 내놓으라는 건지, 그리고 무엇보다도 청원인의 실명이나 실제 나이, 하는 일 등 기본 신상도 모르는데 누군지도 모르는 가면의 인물에게 어떻게 답을 하라는 건지, 이쯤되면 답변을 하려고 해도 제대로 할 수도 없는 상황이 되고 만다. 구청이나 동사무소에 누군지도 모르는 민원인이 '소인은 청학 동자이온데.....'하고 상소문 형식으로 내용도 모호하게 민원 서신을 보냈다면 담당 공무원이 무슨 말로 어떻게 회신해야 하겠는가?
그래서인지 나는 상소문 형식의 '시무 7조'를 읽었을 때 무슨 무협지나 사극을 보는 것 같은 허황된 느낌이 들게 되었던 것 같다. 나는 청원인에게 이렇게 물어보고 싶다. 본인은 과연 대통령이나 청와대 관계자로부터 어떤 답변을 기대했는지? 과연 청원인은 자신의 상소에 맞추어 문재인 대통령이 '과인은 너의 상소를 읽고 하교하노라.'라며 답변해 주기를 바라는 건지, 아니면 자신은 봉건 사회적 설정과 허구적이고 우화적인 표현들을 사용했어도 청와대가 현재 상황에 맞게 잘 알아들어서 현실적 표현으로 바꾸고, 익명이나 숫자로 고발한 '대신'들과 사건에 대해서도 청와대가 수수께끼 풀듯 밝혀내어서 한번 '책임있게' 답변해 보라는 말인지 청원인의 생각이 정말 궁금하다.
6. 미디어는 메세지다
세간에 크게 화제가 되고 있는 '시무 7조', 그 내용에는 공감이 가는 면도 많다. 그러나 갓을 쓰고 도포를 입은 채로 애매한 말로 '통촉하여 주소서'는 정말 아니라고 본다. 마샬 맥루한은 그의 명저 '미디어의 이해'에서 '미디어는 메세지'라고 설파하였다. 현대 정치에 관련된 청원의 메세지를 봉건 시대의 상소문이라는 시대 착오적 미디어에 담을 수는 없는 일이다. '시무 7조'의 청원인이 제대로 된 형식과 요건, 현실에 맞는 분명한 표현과 객관적 논리를 갖추고 수준 있는 청원이나 정치 논평을 써주기를 바란다.
상소문 '시무 7조'는 아무래도 좀 생뚱맞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