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해] 가을 문안
가을문안
-김종해
나는 당신의 어디가 아픈지 알고 있어요.
알고 있어요, 하지만 나는 말할 수 없습니다.
오오, 말할 수 없는 우리의 슬픔이
어둠 속에서 굳어져 별이 됩니다.
한밤에 떠 있는 우리의 별빛을 거두어
당신의 등잔으로 쓰셔요.
깊고 깊은 어둠 속에서만 가혹하게 빛나는 우리의 별빛
당신은 그 별빛을 거느리는 목자가
어디 있는지 알고 있어요.
종루에 내린 별빛은 종을 이루고
종을 스친 별빛은 푸른 종소리가 됩니다.
풀숲에 가만히 내린 별빛은 풀잎이 되고
풀잎의 비애를 다 깨친 별빛은 풀꽃이 됩니다.
핍박받은 사람들의 이글거리는 불꽃이
하늘에 맺힌 별빛이 될 때까지
종소리여 풀꽃이여...
나는 당신이 어디가 아픈지 알고 있어요.
알고 있어요, 하지만 나는 말할 수 없습니다.
*출처 : 시집 『왜 아니 오시나요』(문학예술사, 19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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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의 이글거림이 아직은 한낮을 점령하고 있습니다
아침저녁으로 선선한 기운이 벌써 가을을 느끼게 하는데
저만의 느낌은 아닐 테지요.
제가 몸담아 나누던 일터에서 이제 떠납니다.
긴 터널을 바야흐로 벗어나려 합니다.
여름이 제 옷을 벗고 가을에게 악수를 청하듯이
세상과 악수하러 저도 떠납니다.
부족한 세월이 참 많았지만
알고 지낸 많은 사람들이 제 삶의 배경이 되어 주셨습니다.
저는 그 속에서 참 행복했습니다.
고마울 따름입니다.
시인은
‘나는 당신이 어디가 아픈지 알고 있어요.
알고 있어요, 하지만 나는 말할 수 없습니다.’
라고 속삭입니다.
아픔은 혼자서는 짐이 되지만 열면 위안이 될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일로 함께 모이는 까닭이 거기에 있습니다.
열린 마음은 통한다 했습니다.
닫힌 마음에는 상처가 머물러 있지만
열린 마음에는 상처가 치유된다고 합니다.
어는 가을을 위해
마음을 열어 놓으십시오.
詩하늘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