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시 감상

[김사인] 달팽이

行雲300 2008. 2. 3. 22:24

달팽이/ 김사인

 

 

귓속이 늘 궁금했다

 

그 속에는 달팽이가 하나씩 산다고 들었다

바깥 기척에 허기진 그가 저 쓸쓸한 길을 냈을 것이다

길 끝에 입을 대고

근근이 당도하는 소리 몇 낱으로 목을 축일 것이다

달팽이가 아니라

실은 도적굴로 붙들려 간 옛적의 누이라고도 하고

골방에서 평생을 난 앞 못 보던 외조부라고도 하지만

슬프고 옹색하게 생긴 저 구멍 너머에서는

누구건 다 달팽이가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안에서 달팽이는

천 년쯤을 기약하고 어디론가 가고 있다고 한다

귀가 죽고

귓속을 궁금해할 그 누구조차 사라진 뒤에도

길이 무너지고 모든 소리와 갈증이 그친 뒤에도

한없이 느린 배밀이로

달팽이는 오래오래 간다는 것이다

망해버린 왕국의 표장標章처럼

네 개의 뿔을 고독하게 치켜들고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더듬더듬

그토록 먼 길을

 

[현대문학]-2008년 2월호.